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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10. 2021

극단적 개인주의자

혼자일 때 편하고 혼자일 때 빛난다

혼자 있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사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내향인, 아싸, 개인주의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나도 그 중 하나다. 혼자 있는 게 좋다. 때로는 정말 친한 친구들조차 함께 있기 버겁다.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다. 그냥 지독히도 혼자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할 뿐이다. 한때는 대인기피증을 의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또 표면적인 사회생활은 그럭저럭 하는 걸 보니 병은 아닌 것 같고. 그저 태어나기를, 또 자라기를 극단적인 내향인으로 난 것 같다.


이런 스스로의 성격을 ‘극단적 개인주의자’라는 명칭으로 집약해 보았다. 극단적으로 개인임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자. 개인임을 추구한다는 건 동등하고 독립적인 개인으로 타인을 대하며 타인 역시 나를 그렇게 대하기를 바란다는 의미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여기서 개인주의자라는 단어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모든 사람이 동등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를 꿈꾸는 사람을 의미한다. 정(情)보다는 합리성과 실력을 중시하고 끈끈한 사이보다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정중한 관계를 선호한다. 누군가는 차갑다고 느낄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 가장 생산적이고 편안한 내향인들로써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꼭 이러한 인간상이 옳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이를 추구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성향은 때로는 이기적으로 비친다. 그러나 개인주의자가 이기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빛을 지는 걸 싫어해 주어진 몫은 책임지고 해내는 경우가 많다. 폐를 끼치기 싫기 때문이다. 조금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폐를 끼쳐 타인과 필요 이상의 관계를 맺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나는 나, 너는 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자. 그리고 우리, 필요한 만큼만 가까워지자. 그러는 편이 서로 즐거울 거야.


너무 냉소적인가. 그러나 분명 공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혼자일 때 빛나고 혼자일 때 편하다. 사람 자체가 싫은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가까운 건 부담스럽다. 나는 너의 영역을 존중할 것이고 너 역시 나에게 똑같이 하기를 바란다. 그게 개인주의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관계다.


성격이 이렇다 보니 내향적인 성향을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들만 곁에 남았다. 내 성격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것을 알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어 주는 이들이 참 고맙다. 개인주의자라고 해서 관계의 소중함을 모르는 건 아니다. 지켜야 할 각자의 영역이 좀 더 뚜렷할 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나이가 들며 더 성숙해진다면 사람과의 가까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성격을 인정하고 납득하는 것은 스스로와 화해하는 일이다.


내향적인 성격은 뚜렷한 단점도 꽤 많고 외향인에 비해 덜 선호되는 건 사실이다. 나 역시 타인을 불편해하는 경계심 많은 성격을 콤플렉스로 여겨 왔다. 그러나 스스로가 내향인임을 고치려 들지 않고 납득하고서부터는 당당하기로 했다. 나는 내향인이다. 개인주의자다.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생산적인 사람이다. 그냥 그런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랐고, 딱히 바뀔 필요는 없다. 그게 나니까. 단점만큼 장점도 가득한 사람이니까.


그러니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면 스스로의 성격과 화해해보기를 권한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타인 역시 받아들일 수 있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타인과 어울리는 것도 좀 더 편해진다. 평생의 고민에 힌트가 생긴다고 할까. 여전히 인간관계는 어렵겠지만 그 즐거움을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혼자의 편안함을 포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 당신은 혼자일 때도 눈부시게 빛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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