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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ug 16. 2024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성취 강박과 만족하는 정신은 공존할 수 있는가

1.

오늘은 페이지를 종이에 쓰고 싶지 않다. 글을 종이에 쓰는 것과 노트북에 쓰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전자는 폐쇄적이다. 남에게 보일 목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사용한 글은 언제나 노출과 공개를 전제로 한다. 머리를 떠도는 문장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매개로 붙잡아두고 싶다는 생각은 글을 공개하고 싶다는, 어딘가에 올리고 싶다는 욕망을 반영하고 있다.


무엇을 원하는가? 잔뜩 게으른 하루를 보낸 주제에 이제서야 움직일 마음이 들어 종이 대신 노트북을 켠 나는 대체 무엇을 원하는가? 


삶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다. 이미 주어진 것들이 많았고, 원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내게 찾아왔으며, 나는 그것들을 거절하지 않았다. 기회를 움켜잡았으며 때로는 치열하게 노력했다. 원하지 않았던 상실조차도 끝내는 내게 더 이로운 방향으로 돌아갔다. 삶이 친절했음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근본적으로는 낙관주의자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지금 나의 시간을 지독하게 끌어내리고 붙잡아두고 있는 이 공허함은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끈질기게 그 근원을 찾아 붙잡아 시작과 끝을 명명하게 밝혀낸다면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이루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그래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시작하지 못한다. 나의 재능이 낭비되는 것과 그것에 한계가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이 모든 이야기를 이루지 못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오만하게도 그것들을 모두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오만하거나 혹은 겁쟁이거나. 삶을 어느정도 산 다음이라면 원하는 것을 전부 가질 수는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어쩔 수 없는 일에 적용되는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미래에는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도 고민하고 망설인다. 무엇이 최선의 이야기일지 알지 못해서. 시간은 또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공허함에서 벗어나는 행복의 비결임은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면 어떡할텐가? 당신은 그게 가능한가? 실천하고 있는가? 행복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감사하려고 노력하면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하려고 결심하면 행복해지는 사람인가?


알고 있다. 결국 나를 변화시키는 것도 내 삶을 낫게 만들고 행복을 찾는 것도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린 일임을. 누구도 그 일을 대신해 줄 수 없다. 답은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 글쓰기는 그나마 내가 아는 것들 중에선 답을 찾기에 꽤 괜찮은 방법이다. 그래서 다시금 매달려본다. 지금 문제가 뭐지? 정확하게 뭐야? 구체적으로 적어 봐.



2.

하고싶은게 너무 많다. 그게 문제다. 그럭저럭 정해져 있던 미래가 갑작스레 사라진 후 강제로 주어진 큰 시간은 너무 많은 가능성을 내게 열어주었다. 그러나 삶은 유한하기에 그 모든 것을 이루는 건 불가능하다.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잘라내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순위를 정해 무엇을 살리고 쳐낼지를 판단해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 삶이 그렇지 않은가. 모든 가능성을 붙잡는 건 동화에서만 가능하다. 누구나 포기하고 살아간다. 누구나 단념하고 살아간다. 다들 그렇게 살아갈 테다. 나라고 그러지 못할 것이 뭔가? 그렇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모든 것을 붙잡고 싶어. 그게 내 영혼의 소리다. 나는 내 욕망에 솔직하고 싶다. 욕망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배우고 읽고 들어온 모든 충고와 조언에도 불구하고. 제 발에 걸려 넘어져 한참을 주저앉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때 잠깐의 반짝임을 보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편안하게 사는 것이 – 답이라고. 만족하고 욕심부리지 않고 일상의 쾌활함에 감탄하면서.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도 답 중 하나겠지. 그러나 결국, 내 영혼의 소리를 진실되게 듣고자 한다면, 나는 목표와, 달성과, 성취와, 인정과, 새로운 가지, 뻗어나가는 정신, 넓은 지식, 교양, 수많은 잡기술들, 많은 언어, 그리고 깊이와 여유로움을 갈망한다. 또한 인간적 성숙을. 내 사람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정신적 깊이와 여유로움을 갈망한다. 나아가서는 사랑을, 사랑을 마땅하고 기꺼운 마음으로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의 용적을 갈망한다.


첫 번째 괴로움은 이 수많은 갈망에서 나온다. 나는 한낱 평범한 인간일 뿐이고 시간도 에너지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얻고자 하는 갈망은 초조함을 부른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앞서 보았던 반짝임을 결국에는 부정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것이 두 번째 괴로움이다. 모든 것을 갈망하는 동시에 목표와 성취에 속박된 삶에서 해방되기를 은밀하게 희망하는 모순된 마음.


열심히 살지 않아도 나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편안함을 얻을 수만 있다면 저 수많은 갈망과 성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타인의 승인과 이해시키기 쉬운 성공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을 선망하고 그저 행복하기로 마음먹기에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을 꿈꾼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갈망’ 없이 지금의 나에게 만족하는 평화로움을 동경한다. 주어진 것에 감사한다는 그 단순한 진실을 갈망한다.


뛰어나고 싶고, 노력하고 싶지만, 동시에 –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로 가치감을 느끼고 싶다. 그것이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 생각하기에.


모순은 정신의 고통을 부른다. 결국 무엇이 나은지 결정하지 못하고 두뇌를 어지럽힌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결정해 버린다면 다른 쪽을 무시하게 되는 것 같아서 그럴 수가 없다. 누가 나에게 명확한 답을 줄 수 있겠는가? 누가 인생에서 무엇이 더 나은지 단언할 수 있겠는가? 



3

결국 오늘도 결론을 얻지 못했다. 이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까? 그나마 얻은 것이 있다면 ‘글’이라는 것을 하나 더 세상에 만들어 냈다는 것. 그게 내가 오늘 발휘한 생산성이다. 글을 쓸 때 느끼는 희열이 있다. 불확실하게 떠다니는 생각들을 날카로운 갈퀴로 붙잡아 잉크든, 활자든, 어떤 형태로든 만지고 던질 수 있는 형태로 고정하고 정확하게 표현해 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이 있다.


(이것조차 나는 포기하고 싶지가 않다. 모든 것에서 나는 더 잘하고 싶다. 뛰어나고 싶다.)


결국엔 알고 있다. 아무튼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내가 무엇을 원하든 간에 실제로 그걸 가질 가능성이 있던 없던, 행동하고 시간을 쌓지 않으면 비어버린 시간은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그러니 아마 앞으로 한동안은 해야 할 일에 시간을 집중할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씩 해 나갈 것이다. 한동안은 괜찮을 거다. 글쓰기란 번뇌를 뇌 밖으로 끄집어내어 저장하는 창고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또다시 내 머릿속이 번뇌로 뒤덮여 글을 쏟아내야만 하는 순간이 올 때까지는.


이 글을 읽은 누군가는 이해할 것이다. 통제할 수 없이 불어나는 생각을 글로나마 쏟아내고, 그렇게나마 일상에서 격리시켜야 할 필요성을. 이 글이 쓰인 연유를. 그리고 그런 당신에게 아주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어쩌면 생각을 더 흔들어 두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사진참고, 디지털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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