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행 비행기를 끊다

혼자, 제주도, 일주일

by 김유연

18,500원. 익산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보다도 저렴한 가격이었다. 마치 계시처럼 일주일의 여행을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바로 제주행 비행기를 끊었다. 바다 건너 갈 수 있는 곳 중 가장 편안하면서도 궁금한 곳. 그것이 제주였다.




얼마 전 제법 긴 여유 시간이 생겼다. 아주 중요한 시험을 하나 끝냈고 그 결과는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때까지는 아마 무엇에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행을 하자고 생각했다. 여행은 언제나 지겨운 권태를 끝장내는데 거의 100%의 성공률을 보여왔으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한다면 글을 쓰자고 생각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하루키의 여행기를 좋아했고 그런 물건을 만들어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또 책을 한 권 더 내고 싶었다. 가능하면 계속해서 책을 내고 싶었고 이 여행기가 그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다면 혼자 떠나야 했다. 보고 싶은 관광지가 줄을 서 있는데 오늘의 분량을 써야 하니 여기서 두 시간만 기다려 줘,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처음부터 혼자 갈 생각이었다. 당장 다음 주에 떠나는데 이제 와서 일행을 구하기도 어려웠고 애초에 혼자 여행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부터 여행을 떠남에 있어 굳이 동행을 구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친한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도 정말 좋아한다. 여기에는 우열이 없다.)


혼자 하는 여행도 심심할 틈이 없다. 오히려 머리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모든 일정을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마음껏 조율하고 상상한다. 숙소 침대에서 편한 잠옷으로 뒹굴거리며 다음날의 모습을 그려보고, 그걸 구현해 내고, 필요하다면 그때그때 조정하면서 새로운 장소를 쏘다닌다.


그런 과정이 퍽 즐겁다. 재미있다. 무엇보다 자유롭다. 자유로움보다 더 큰 가치는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 여행하기를 망설인다. 혼자 카페를 가거나 밥을 먹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행은 그중에서도 난도가 높다고 여겨지는 듯하다. 어떤 각오가 필요한 일처럼 말이다. 어쩌면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평소와 같은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곳에서, 부딪히는 모든 어려움을 혼자서 대처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의견을 물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막막함, 모든 일이 내 책임이 된다는 두려움이 걸림돌이 된다.


그렇지만 먼 여행지에서 나 혼자일 때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종류의 기쁨도 있다. 세상만사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없는 법이다. 내가 경탄한 바로 그 순간, 그 풍경에 원하는 만큼 멈춰서 머물 수 있다. 내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고 내 취향에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모든 득과 실, 행동과 결과가 내게 달렸기에 오히려 편하다. 어깨 위에 짊어진 것은 나의 만족뿐이다. 식당을 잘못 골라도 나만 맛없으면 그만이다. (멋진 풍경을 봐도 나만 기쁘고 끝이겠지만…. 아무튼 당신은 기쁘다. 그것으로 충분히 좋지 않나?)


만약 집중할 만한 감정이나 취향을 모르겠다면 오히려 혼자서 떠나봐야 한다. 입이 떡 벌어지는 해변가 앞에서 혼자라면, 이 광경이 2시간을 운전해서 올 만큼 '가슴을 울리는지'를 따질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뿐이다. 그렇게 여행의 곳곳에서 당신의 기호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혼행(혼자 여행)의 기쁨을 알고 있었기에 다음 주 월요일의 비행기 티켓을 기꺼이 끊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가장 가격과 시간대가 좋은 그다음 주 화요일로 정했다. 제주도, 혼자, 일주일. 뭔가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지금 이곳에서 쓰기를 시작한다. 때론 앞으로 펼쳐질 일정을 고대하며 쓸 것이고 때론 끝내줬던 그날의 일출을 떠올리며 쓸 것이다. 서귀포 숙소 앞의 세련된 카페에서, 넓게 펼쳐진 녹차밭 앞에서, 노을이 지는 외도동 바닷가에서 기록이 이어진다. 여행이 끝난 뒤 덧붙이는 부분도 있을 테고 시작하기도 전에 써 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틈나는 대로 쓰고 사진을 찍는다. 의미 있는 순간을 골라내어 살을 붙인다.


그렇게 한 권의 여행기가 만들어진다. 제주도의 검고 푸르른 바다 앞에서, 두려움을 딛고 혼자 떠난 여행자가 자기만의 자유로움을 만나길 바라며.


IMG_8095.jpeg 제주행 비행기 / 여행 1일 차

제주도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구독해 두시면 이어지는 여정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월,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