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포자 미대생이 1년 반수 해서 의대 가다. 흔치 않은 경험이라 생각해 반수와 공부를 글쓰기의 주 콘텐츠로 삼았다. 내 인생에 일어난 가장 극적인 사건이기도 하고. 다른 길을 걷고 싶어 하는 누군가가 읽고 용기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공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공부보다 훨씬 쉽고 재밌는 일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에 비하면 지루하고 고될 뿐이다. 공부에 대해 쓰려하면 온 몸에 가시가 돋는다. 아악, 놀고 싶어! 글마저 공부에 대해 써야 한다니! 가끔 확 던져버릴까도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을 매일 12시간씩 앉아 공부할 수 있었던 건, 공부가 주는 재미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재밌는 활동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주 쪼금은, 요만큼은, 공부만이 주는 확실한 재미가 있다. 그걸 알고 나면 훨씬 쉽다. 집중, 이제부터 본론이다.
첫 번째 재미는 바로 ‘초월의 순간’이다.
초월의 순간이란 나의 실력이 한 차원 높아지는 시점을 말한다. 실력을 계단에 비유한다면 평지에서 다음 계단으로 올라서는 바로 그 순간이다. 이 순간은 매우 물리적이고 뚜렷하게 존재한다. 내가 다음 단계에 이르렀음을 깨달을 때, 그 짜릿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목표를 가지고 진득하게 공부해봤다면 뚜렷하고 분명한 초월의 순간들을 경험해 봤을 거다. 이 경험이 있나, 없나. 그게 핵심이다. 이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은 공부를 시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공부는 누구에게나 지루하고 고되지만 이 고비를 넘으면 어떤 보상이 따라올지 알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으로 초월을 경험한 것은 ‘국어’ 과목이었다. 예전부터 책을 좋아했다. 중학교 땐 베르나르 베르베르에 미쳐 살았고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었다. 고등학교 땐 안나 카레리나 등의 고전소설을 즐겨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어 모의고사를 푸는데 모든 글이 너무나도 쉽게 읽혔다. 문제를 읽으니까 그냥 답이 보였다. 모든 텍스트가 내 아래 있는 느낌! 적어도 수능 수준까지는 명확하게 모든 문제가 내 수준 아래 있는 것을 느꼈다. 틀릴 수가 없었다. 그 계단보다 위에 서있었으니까. 얼마나 짜릿하던지.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국어공부를 따로 해본 적이 없다. 고3 때도, 의대를 가려고 반수를 할 때도. 지금까지도 독해력을 필요로 하는 과목은 내 학점을 책임지는 고마운 영역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원래 영어가 너무 싫고 어렵기만 한 학생이었다. 단어를 다 못 외워 나머지 수업을 받기 일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됐다. 그런데 인터넷에 그 애니메이션의 영어 팬픽(팬 픽션, 팬이 그 작품을 기반으로 쓴 소설)이 수없이 많은 걸 발견했다. 그날로 쉬는 시간마다 팬픽만 읽었다. 한 문장 읽으면 모르는 단어가 반이라 줄기차게 사전을 찾았다. 읽고 또 읽고. 그렇게 고2 시절을 영어 텍스트에 빠져 살았다. 거의 수천 편을 읽은 것 같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사전을 찾지 않게 됐다. 같은 단어를 9번 정도 찾으니 슬슬 외워지는 거다. 너무 많이 읽다 보니 어느 순간 수능 지문이 짧게 느껴졌다.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수능 영어는 만점을 받게 됐다. 계단의 꼭대기에 있지는 않아도, 적어도 ‘수능 수준’의 계단 위에 올라선 게 느껴졌다. 자연스레 자신감이 붙었다.
계단을 한 칸 올라선다는 건 그 아래의 수준을 초월했다는 의미다. 적어도 내가 올라선 수준 이하의 문제들로는 어려움을 겪을 일이 없다. 이를 경험해보면 자연스럽게 다음 목표가 생긴다. 바로 계단을 한 단계 더 올라가는 것!
내가 수포자였음에도 의대를 갈 수 있으리라 용감하게 도전한 것은 내가 다다라야 할 목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학과 과학에 있어서 적어도 ‘수능 수준’까지의 계단 위로 올라서면 됐다. 이미 해봤으니까. 가야 할 길이 뚜렷하게 보였다.
두 번째 재미는 바로 공부한 걸 '써먹는' 순간이다.
어떤 분야의 지식이든 일정 수준 이상을 쌓으면 실생활에서 써먹을 수가 있다. 이 재미는 많이들 느껴 보셨으리라 생각한다. 외국어를 배워 여행에서 직접 주문을 해 본다던가, 원서를 자신 있게 찾아본다던가 할 때 말이다. 내 노력이 이뤄낸 결과가 눈으로 보이니 뿌듯하다. 지식은 머리에 담아두는 걸 넘어서 일상에서 직접 써먹어볼 때 더욱 빛이 난다. 인터넷 검색이나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특히 외국어 공부에서 이러한 재미가 두드러진다. 교양수업으로 배운 짧은 독일어로 오스트리아 기차 방송을 알아들었을 때 얼마나 신나던지. 이 맛에 다들 외국어 하나보다 싶었다.
셋째는 '통섭'의 순간이다.
공부를 하다 보면 여러 분야의 지식들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혹자는 이를 ‘통섭’이라 명명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서로 다른 영역의 지식들이 엮이고 합쳐지는 것이 보인다. 이게 또 참 짜릿하다. 미대 시절 서양철학 개론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꽤 적성에 잘 맞아서 몇몇 관심 있는 철학자들의 저서를 추가로 찾아 읽었었다. 그런데 의대에 와서 한 교수님이 그 시절에 읽었던 책을 추천해주시는 게 아닌가. 인간의 ‘몸’에 대해 이해하는데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얼마나 신기하던지. 또 어떤 책을 읽을 때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의 책이 추천도서로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마다 세상이 참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학문 또한 학교 과목처럼 딱 잘라 나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뿌리를 공유하기도 하고 겹치고 갈라지며 발전해왔구나 싶다. 한 분야에 대해 깊이 파고들수록 더 넓은 시야와 지식이 요구된다. 공부란 깊게만 파고드는 과정이 아니라, 깊어지는 동시에 넓어지는 일이다.
공부의 재미를 알면 공부가 한결 쉬워진다. 비록 구체적으로 공부 '잘하는 법'을 제시한 것은 아니지만, 뭐든 즐기는 사람이 가장 위에 있다고들 하지 않나. '즐기는 법'을 알면 '잘하게' 된다. 어느 분야든 스스로 그 재미를 느껴봐야 한다. 그 순간에 다다르기까지는 지루하고 고된 반복학습이 필요하다. 건너뛸 수 없는 시간이 있다. 많이들 이 구간에서 포기한다. 이 고비를 넘어야 한다.
조금만 더 버텨라. 버텨서 계단 위에 올라서는 경험을 해 보시라.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공부라는 한 편의 프로세스가 내 발아래 있는 게 보일 때, 당신은 무엇이든 배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휩싸인다. 공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한평생 함께할 든든한 자산이다. 공부, 생각보다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