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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ug 12. 2020

가끔은 카페에서 하트 파이를

땡스 투 스타벅스

내가 다녔던 재수학원 별관 근처엔 스타벅스가 무려 5군데였다. 이 중 특히 가까운 한 곳이 있었다. 서초역 바로 앞의 넓은 1층 매장. 그곳은 내 휴식처이며 성소(聖所)였다.


평일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셔틀버스를 타고 등원했지만 주말은 자율 등원, 하원이었다. 또 야간 수업이 없고 온종일 자습만 했다. 오전, 오후, 저녁 세 타임 중 두 타임만 자습하면 됐다. 평일에 비해 일정이 비교적 널널한 주말에는 가능한 여유를 즐기고자 했다.


어느 토요일 아침. 오전은 쉬고 오후와 저녁 자습만 하기로 결정한 날. 넉넉히 11시쯤 서초역에 도착했다. 익숙한 위치의 스타벅스에서 아점으로 카페 라떼와 하트 파이를 시켰다. 스타벅스 하트 파이. 드셔 보신 분은 알겠지만 정말 바삭하고 달다. 살짝 끈적한 시럽 코팅이 부드럽고 묵직한 라테와 찰떡궁합이다. 바사삭 부서지는 파이 한 조각 입에 넣고 카페 라떼 한 모금 홀짝이면 이런 게 행복이지 싶다.


내 신조 중 하나가 ‘어떤 순간에도 삶은 살 만해야 한다’이다. 지난번 독서 이야기를 할 때에도 언급했지만 아무리 입시 중이라도 지나치게 불행해서는 안 된다. 목표를 위해 참고 견디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것 또한 삶이다. 지금의 견딤이 끝나야 삶이 시작되는 게 아니다. 모든 고통도 과정도 결국 살아내는 삶이다. 그러니 살 만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바쁜 와중에도 작은 즐길거리를 마련해두고, 여의치 않더라도 상황 자체를 즐기려 노력한다. 스타벅스 하트 파이는 이런 내 좌우명에 딱이다.


유리창 밖으로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사색에 잠긴다. 주말이라 그런지 카페에 사람이 꽤 많다. 다들 각자의 일에 몰두해 있다. 매일 아침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옆에는 딱딱한 문제집이 가득 담긴 묵직한 책가방. 휴식은 길게 허락되지 않는다. 곧 학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저 지금을 즐기자.


향긋한 하트 파이의 꾸덕한 시럽 향이 퍼진다. 달콤함에 빠진 토요일 오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짧고 성스러운 휴식. 어떤 순간에도 삶은 살 만해야 하니까, 가끔은 카페에서 하트 파이를.


부스러기 하트, 2020, 디지털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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