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8일 일요일, 천안에 있는 뮤지엄호두에서 ‘청년작가 성장캠프’가 열렸다. 캠프는 금·토·일 3일간 미술계 전문가들의 강의와 포트폴리오 리뷰로 진행되는데, 나는 일요일 하루 시간이 되어 마지막 날 참가할 수 있었다. 일요일은 김현주 평론가님과 정철규 작가님이 각각 이론과 실용 파트를 강의하셨다.
당일 아침 일찍 대전복합터미널에 가서 버스를 타고 천안역에 내려, 미술관에서 오는 셔틀 차량에 탑승했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천안역으로부터 미술관까지는 차량으로 40분 남짓 걸렸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미술관 가는 길은 가을 정취로 호젓했다.
뮤지엄호두에 개인적인 일화를 하나 가지고 있다. 3년 전쯤 취업을 준비하던 때였는데, 당시에는 미술관 건립 이전이었고 화이트블럭 천안 레지던시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을 때였다. 그때 미술관 인턴을 뽑는 자리에 지원해서 지금은 관장님이신 박미연 학예실장님과 면접을 봤었다.
오랜만에 관장님도 뵙고 다시 인사를 드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관장님도 당시 취업과 작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나를 기억하고 계셨는데, 결국 나는 둘 다 하고 있는 사람으로 여기 오게 되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어리석고 순진한 고민이었다 싶기도 하지만, 마냥 그렇게만 치부할 수 없는 건 많은 사람들이 늘 자기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된 마음의 줄다리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작업을 하고 싶으면 작업을 하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벌면 되는, 단순하긴 하지만 명료하게 똑 떨어지는 일은 아닌 것이다.
캠프에 참여한 작가님들은 스무 명 남짓 되었는데, 함께 셔틀을 타고 오는 동안은 조용한 침묵이 감돌았지만, 미술관에 도착해 카페에 모여 대기하는 동안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인스타 팔로우도 하고 한결 가벼운 분위기로 강연장에 착석했다.
세 시간 조금 넘게 이어진 강의는 알차고 유익한 내용들로 가득했다. 3일 연속으로 참여하고 있는 작가님들도 계셨는데, 전체 프로그램을 다 들었다면 굉장한 시간이었을 것 같다. 나에게 이날의 강연이 특별했던 것은, 강의와 포트폴리오 리뷰를 통해 지금 내 작업에서 핵심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지점을 짚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앞 호에서 무가지를 만드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들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작업의 경계를 확장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는 대전 지역을 리서치하고 삶의 주변을 기록해 본다고 했다. 그런데 ‘나’와 ‘확장’ 사이에서 아직 정리가 덜된 모호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잘 모르겠기에 일단 작업을 하면서 찾아보기로 했었는데, 이번 캠프의 리뷰에서 바로 그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작업의 주제를 꼭 거대한 관점으로 확대하기 보다는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봐도 좋을 것 같다는 피드백이었다. 두 번째는, 그림 속에 담은 구체적인 서사와 이야기의 요소들을 제시하는 게 내 작품을 전달하는 데 있어 과연 효과적인 방식일 조금 더 고민해 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며칠 밤을 지나며 피드백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작업은 나의 관심사와 시선을 타자들과 공유하는 일이 될 텐데, 혹여나 나만의 이야기가 될까봐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일기장 작업이라고 조롱당할까봐.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았고 무엇에 슬펐고 기뻤는지를 순전하게 드러내는 것에 강박적인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홀로 느끼고 만족하는 것으로는 안 되고, 반드시 누군가와 함께 공유할 수 있을 만한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작업이 누구에게 호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일상에서 수집하고 들여다보고 관심을 갖는 것들은 삶의 작고 작은 부스러기 같은 순간의 지점들이었다. 이 생각을 내 짝꿍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내년에 있을 2인전을 준비하면서 전시 제목을 비롯해 큰 기획을 그의 주도로 하고 있는데, 내가 하고 있는 실제적인 작업과 언어로 표현되는 설명 사이에 미묘한 다름이 있어서 작업에서 무엇을 핵심으로 보아야 할지 다소 고민 중이었다는 것이다. 덧붙이기를, 개인적인 이야기를 거치지 않고 큰 이야기로 확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자신 역시 내밀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아갔다고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내가 경계를 확장해보려는 리서치들은 무용할 것인가? 아니, 그것은 그것대로 하되, 작업에서는 조금 더 내밀한 이야기들을 담아보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면 언젠가 둘이 만나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나도 종종 포트폴리오를 발표하거나 작업 노트를 쓸 때 스스로 느끼기에도 잘 연결되지 않는 양쪽을 연결하느라 애를 쓰곤 했다. 아직 작업 연구가 부족하고 보다 자연스럽고 능글 맞은 표현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내 작업이 실제로 담고 있는 것과 관념적으로 갖는 강박 사이에 격차가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가장 최근에 세 개의 패널을 연결해 그리고 있는 작업이 떠오른다. 이 작업은 진행할 때도,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도 한결 편안하고, 작업과 나 사이에 훨씬 밀도 높은 연결이 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아마도 어린 시절의 기억과 꿈, 경험들에서 길어 올린 사적인 요소들을 모아 그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거대한 관점에서 한 발 물러났을 때, 작업을 하고 있는 당사자로서 훨씬 자연스럽고 깊게 빠져들고 있음을 느낀다.
당분간은 이 감각에 집중해보면 될까. 내 몸과 마음에 먼저 호소하고 감각하는 것들에. 그리고 ‘이야기’라는 요소. 처음부터 이 ‘이야기’라는 것을 텍스트나 다른 방식을 빌어 구체적으로 들려주려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추동력을 갖는 나만의 개인적인 에너지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시에서는 이야기들을 감추는 편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림 속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수단을 강구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도록을 그림책의 형식을 빌어 제작하거나. 그런데 계속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중점을 두다보니 그림 보다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에 먼저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보이고, 특히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작품을 감상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야기’들은 당분간 혼자만 가지고 있어 보려고 한다. 이야기는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바는 어디까지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그리는 것에 있다. 내가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했으면 애니메이션이나 설치 등 더 입체적인 형식을 생각해보았겠으나, 다른 매체보다도 회화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에서 내 작업의 이유와 삶의 방식을 찾기 때문이다.
이번에 받은 피드백들이 내 작업에 있어서 완전히 절대적인 평가는 아닐 수 있다. 다만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일이 드물고, 특히나 나를 처음 보는 분들로부터 내 작업에 관한 인상을 들을 기회는 흔치 않기에 이번 시간이 나에게 유독 더 흥미롭고 가치 있게 다가왔던 것 같다. 여러 생각들이 오가지만 시간을 길게 두고 계속해서 붓을 잡은 채로 고민을 하나하나 풀어 가보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