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생명다양성재단과 창작 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이동시')에서 주최하는 야생동물 글쓰기 공모전에 글을 냈다. 공모의 주제는 야생동물과 조우했던 경험을 쓰는 것. 선정된 글은 9월 27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최되는 '리와일딩 컨퍼런스'에 프린트되어 참여자들이 읽어볼 수 있도록 전시되었다. 원한다면 글쓴이가 참석해 글을 낭독할 수도 있었는데, 나는 회사에 출근 해야 해서 아쉽게도 낭독은 하지 못했다.
최근 기후 변화 대응책으로 리와일딩(Rewilding)이 새롭게 도입되고 있다고 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망가진 지구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제안되는 것이다.
나는 몇 년 전 아침 출근길에 목격한 고라니의 죽음과 로드킬을 소재로 글을 썼다. 어둡고 음울한 겨울 아침, 도로 위에 엎드러진 고라니와 마치 장애물을 피해서 가는 개미 떼처럼 서행하던 자동차들의 풍경에 대해서.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로드킬을 신고하고 나서 받은 문자 메시지였다. 인간과 동물이, 이 세상 위에서, 지구 위에 발을 딛고, 어떤 줄타기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깊은 한숨 밖에는 다른 호흡이 없었던 그날 아침. 어쩌면 우리는 재설정조차 불가한 영원한 새로고침의 버퍼링 위에 놓여있는 것은 아닐까.
「7시 49분」
2024년 1월 8일 아침. 여느 때처럼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와 출근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버스 도착시간은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5분, 4분…. 서늘한 겨울 공기가 안경에 김을 서렸습니다.
무심히 스크린에서 고개를 돌려 도로를 보았습니다. 흐리지만, 분명히, 그것은 고라니입니다.
아침잠이 덜 깼나 싶어서 눈을 부릅 떠보았지만 마음속으론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고라니에게 시선을 길게 둘 수 없었습니다. 얼핏 보아도 도로 주변으로 번진 붉은 자국들은 고라니의 부상 상태가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를 발견하지 못한 차들이 몇 번이고 그 몸을 지나쳤을 것입니다. 내가 버스 정류장에 왔을 때는 모든 차가 느리고 조심스럽게 서행하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막히지 않는 도로가 길게 늘어선 이유를 그제야 알았죠.
주섬주섬 폰을 꺼내 들었지만 잠시 손이 멈췄습니다. 로드킬을 당한 동물을 처리하는 기관이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검색을 반복한 끝에 광고로 도배된 블로그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관련 부서에 전화하면 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ARS 번호로 문자 신고를 하고 폰을 주머니에 넣자 괜히 한숨이 나왔습니다.
다시 스크린을 보니 버스 도착시간까지 1분이 남았습니다.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립니다. 오전 8시부터 업무 시작이라 지금은 응답할 수 없다는 자동응답 메시지입니다. '뭐라고?' 시간을 확인하니 7시 49분. 고개를 들어 도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여전히 차들은 고라니를 피해 가고 있습니다. 내가 타야 할 버스가 고라니의 몸을 가리며 정류장으로 들어왔습니다.
버스에 올라타 맨 뒷자리에 앉아 멀어지는 고라니를 잠깐 바라보았습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다치거나 아파도 119를 부르면 바로 응급차가 달려오는데. 고라니는 이미 숨이 멎었는데도 11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사람의 업무가 시작될 때까지 저 동물의 몸은 계속해서 길바닥에, 자동차 타이어에 쓸리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회사에 도착하면 나의 업무시간이 시작될 것입니다. 오후가 되면 퇴근하고 내일 다시 업무가 시작됩니다. 늘 반복되는 시간의 옆에서 고라니의 시간이 멈췄습니다. 사람과 동물들에게는 서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규칙과 모양들이 있고, 서로의 모양을 조금씩 일그러뜨리거나 깎아서 함께 맞닿아 살아가기 위한 경계면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때론 도로 위에 남겨진 고라니처럼, 제때 구할 수 없는 슬픔의 구석들이 생기기도 하지만요.
그와 나 사이에 영원히 멈춰버린 11분이라는 시간이 지금도 어디선가 맴돌고 있습니다. 여전히 길에서 로드킬 당한 동물들을 만나곤 합니다. 여전히 개발이 지속되고, 산이 깎이고, 타고, 사라집니다. 동물들의 터전도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죠. 길 위에 쓰러진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내 마음속 무언가도 푹 꺼지곤 합니다. 우리가 삶의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없고, 완전한 선과 아름다움에 닿을 수 없다면,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가 맞춰갈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찾고 싶습니다. 11분이라는 연약한 공백의 틈에서 만난 고라니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도록요.
곧, 7시 49분입니다.
(*원고는 공모전에 낸 글을 조금 더 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