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이 되었다. 숫자가 바뀔 때, 우리의 세계는 '새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동쪽 바다로 간다. 그곳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그 해는 어제의 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도.
새해가 되었는데, 어떤 설렘이나 기대보다, 매년 새해가 다가올 때마다 한껏 부풀었다가 시들고 쭈글쭈글해진 나의 낡은 해들이 먼저 생각난다. 어떤 텔레비전 시상식에서 김창완이 했던 수상소감이었던가, 인터뷰였던가, 그 장면이 캡쳐되어 X에 떠도는 것을 보았다. 새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고, 나는 그대로 나일 것이다. 터무니없는 꿈을 꾸지 않겠다, 이런 내용의 말.
아니 에르노가 소설 단순한 열정에 쓴 것처럼,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게임 속 NPC 같다. 모든 것들이 나를 비켜간다.
낡은 해 더미를 뒤적거리면서 생각했다. 이제 더는 내가 되고 싶은 그 무엇을 바라기만 하지 않겠다고. 그냥 지금 그것이 되겠다고. 그렇게 살겠다고.
새해가 될 때마다 괜히 끄집어내는 궁시렁 소리, 작가로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말은 이제 더는 하지 않겠다고. 나를 관통하는 시간 속에서 작가로서 살아남는 일을 고민하기보다, 작가로서 살아가겠다고.
살아남는 작가도 아닌, 살아가는 작가로.
작가의 삶이란 희미하고 아쉬운 것. 나는 그 안에서 일정한 리듬을 타며 내 멜로디를 만들어가겠다. 눈에 보이는 성과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으며. 내가 하는 일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일인 탓에, 캔버스와 종이 위에서 내 능력의 한계를 볼 때면 쇠꼬챙이처럼 절망에 찔리지만, 그렇다 해도 그대로 주저앉는 것보다 절망을 걷는 게 나은 일이라고 굳게 믿겠다. 꿈도 많고 해맑던, 또 바보같이 우울하던 시절, 왜곡된 해상도로 찌푸린 듯한 표정의 그림들로 가득한 고흐 화집이 내게 주었던 별과 태양 같은 위로처럼, 내가 걸어가는 그 길이 어딘가에 작은 빛으로나마 남게 되리라 믿는다. 그 빛이 길을 잃고 헤매거나, 집이 없어 헤매는 다른 누군가에게 닿기를. 그래서 그도 걸어갈 수 있기를. 피도 물도 아닌, 희미한 섬광으로 연결된 유약한 마음의 고리들이 어두운 저 세계 가운데 길게 길게 이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