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친구들과 오랜만의 모임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모였다. 함께 전시를 보고 저녁을 먹는다. 우리는 올해의 작가전과 김창열 회고전, 그리고 상설전을 봤는데, 상설전에서 몇 개월 전에는 잘 눈에 띄지 않았던 작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영상과 드로잉으로 구성된 송상희 작가의 '변신이야기 제16권'이라는 작품이다.
스테인레스 프레임으로 표구된 액자에는 연필 드로잉이 담겨 있고, 애니메이션이 스크린 안에서 재생되고 있다. 스크린 앞에는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고 왼쪽에는 이미 한 사람이 앉아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 작품은 고대 로마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15권의 다음 챕터를 상상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 대서사시는 그리스 전설을 바탕으로 우주의 생성과 변천을 다룬다. 마치 성서의 창세기를 연상케 하는 태초의 세상과 생명체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인간의 모습을 한 아메바 코오라와 공룡 플라시오사우루스, 그리고 고래의 기원이 되는 리바이어던의 사랑 이야기다. 작가는 기묘한 세 생명체를 통해 자연의 복수라는 개념으로 환경과 자연에 대한 독특한 사유를 펼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플라시오사우루스가 죽은 이후 석유가 되었을 때, 석유관 속에서 진동을 일으키며 폭발하여 인간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는 장면이었다.
자연을 위로와 치유, 재발견과 공감, 안식으로 여겼던 내게는 생소하고 낯설면서도 사고의 전환을 일으키는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애절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꽤 모범적인 형식의 연필 데생으로 그려졌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건 마치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규범과 역사에 대한 예상치 못한 반격과 거부로 읽히기 때문이다. 깊은 바닷속에 설치된 석유관. 그것들은 빨대처럼 지구의 심장부로 꽂혀 그 안에 묻힌 옛 존재들을 빨아들인다. 그저 푸르기만 한 저 바다의 반대편에 탐욕의 관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있다. 내 삶은 그 관들에 이어져 있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내 삶은 내가 살아가기도 이전에 이미, 벌어져 있던 것이다. 그리고 복수도, 그렇게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