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이 오고 있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지만, 공기는 조금씩 가을의 향기를 머금는다. 아침저녁으로는 구슬픈 풀 벌레 울음소리가 풀빛 사이로 굴러다니고, 어둠이 해를 먹는 시간이 길어진다. 요즘 들어 자꾸 당신 생각이 난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보낸 여름, 그 여름의 짙은 초록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여름의 끝이 가까워지면, 나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초록빛으로 물든다. 자신이 가진 모든 푸르름을 세상에 다 보여주겠다는 듯, 마지막 힘을 다해 푸르름을 뿜어낸다. 초록빛은 이제 막 다 익어가는 과일처럼, 더 이상 흡수할 수 없는 햇살을 가득 담고 있다. 여름을 붙잡으려는 나무들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보인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듯, 나뭇잎 하나하나가 햇살을 머금고 반짝인다. 그 빛이 너무도 깊고 짙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아래로 내려앉는다.
우리가 함께 걸었던 공원도 이맘때가 되면 그랬다. 나무들이 가장 푸르고 울창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햇살은 그 사이로 조각조각 흘러내렸다. 당신과 나란히 걷던 그날도, 공원은 초록으로 가득했다.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서 걸음을 멈추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에 잠시 눈과 귀를 맡겼다. 찢어질 듯한 매미 소리가 공원을 채우고, 그 소리 속에서 우리는 말없이 여름의 끝자락을 느끼고 있었다. 당신이 말했다.
“이렇게 초록이 짙어지면 여름도 끝나가겠지?”
그 말이 내 가슴에 박혔다. 마치 우리가 곧 헤어질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 당신의 목소리는 이미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때는 웃으며 지나갔지만, 그 말은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당신의 마음이었다.
우리는 매일 저녁, 공원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그 카페는 항상 조용했고,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의 하루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저녁이 되면 붉게 물들었고, 우리는 그 붉은 하늘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색의 여행지를 갈지, 몇 년대의 음악으로 공간을 채울지, 그리고 다가올 가을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웃었다. 그러나 그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어쩌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불안감은 여름이 끝나가는 것처럼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름은 항상 그렇게 끝났다. 나무들이 가장 짙은 초록으로 물들고, 매미 소리가 찢어질 듯 울리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풀벌레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작은 신호였다. 그렇게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시작되었다. 당신과의 마지막 여름도 그랬다. 어느 날 문득,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당신이 떠난 후, 나는 그 공원을 자주 찾았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될 무렵, 나무들이 조금씩 색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며 당신을 떠올렸다. 나무들이 초록빛을 잃어가듯, 내 안에서도 당신과의 기억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짙은 초록빛만큼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 초록빛은 마치 당신이 내게 남긴 마지막 인사처럼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들은 이제 작은 조각들로 남아 있다. 처음 공원에서 만났을 때의 어색함, 당신이 새로 산 카메라로 찍어주던 사진들, 저녁 무렵 자주 가던 카페에서의 대화들. 우리는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었지만, 그 불안감조차도 자연스러운 흐름처럼 여겼다. 그러나 당신이 떠난 후, 그 짙은 초록빛은 내게 아픔으로 남았다. 그 짙은 초록을 보면, 당신과의 마지막 여름이 떠오른다. 나무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당신이 없는 자리는 여전히 허전하다. 그 초록빛이 이제는 우리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 되었다. 그 여름빛은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었다.
지금도 그 공원을 걸을 때마다, 나는 당신이 내 옆에 있을 것만 같다. 손을 뻗으면 당신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손에 스치는 것은 차가운 가을의 기운뿐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짙은 초록을 바라본다. 당신이 남긴 마지막 흔적을, 그 마지막 여름을 기억하며. 언젠가 이 계절이 다시 돌아오면, 나는 또다시 그 공원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만큼은, 당신의 흔적에 더 흠뻑 젖을 수 있기를.
여름이 끝나가는 이 순간, 그 짙은 초록빛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더욱 선명하게 기억하게 한다. 마치 나무들이 여름의 마지막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나도 그 마지막 여름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 초록빛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그 빛 속에서 당신과의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을, 그 짙은 여름의 초록빛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