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라는 게 참 그래요
안녕하세요. 자유지은입니다.
브런치 독자 여러분들께 이렇게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인지 연애편지를 쓰는 것처럼 손끝이 떨리기도 하고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는데 제목이 편지니까 그 얘길 먼저 해볼게요.
저는 어릴 때부터 손편지 주고받는 걸 좋아했는데요, 그렇게 좋아하는 것과는 달리 어떤 편지든 단숨에 써 내려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 같아요. 글 쓰는 사람이 편지 한 통 쓰기가 힘들다니 선뜻 이해가 안 되시죠?
그런데, 이 편지라는 게 참 그래요.
일기처럼 혼자 보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글인 줄 알면서도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내야 하니까 쓰기 전부터 적잖은 부담을 갖게 되거든요. 마음이 복잡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으면 그것마저도 고스란히 전해지니까요. 그래서 편지지 위에 무언가 적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것처럼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같기도 한데요, 아마 한 번이라도 편지를 써 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이해하실 거라고 믿어요.
저한테는 브런치가 비슷했던 거 같아요. 특히 제가 쓴 브런치 매거진 [서울여자의 달콤 쌉싸름한 제주이민]은 일기도 아니고 편지도 아닌, 딱 그 중간쯤에 걸쳐 있는 '혼자 쓰는 편지' 같은 존재였어요. 가능한 한 일기처럼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딱 어떤 지점에서는 독자들을 의식해서 고쳐쓰기도 했죠. 어느 순간부터는 글 말미에 제 글을 구독해달라는 메시지를 적어 넣지 않았는데, 그 이유 또한 제가 솔직해지기 위한 심리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였어요. 물론 구독자가 많아지는 건 좋은 일이지만, 누군가가 100명을 앞에 두고 솔직히 말하는 것과 1,000명을 상대로 솔직히 말하는 것에는 확연한 무게감의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항상 글을 쓸 때마다 마음속으로 '솔직함'과 '거리두기' 사이에서 힘든 줄다리기를 하며 적정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는데, 뜻밖에도 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오히려 독자님들에게 힘을 얻기도 한 거 같아요. 어찌 보면 제가 브런치북 프로젝트에서 은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 덕분에 이루어낼 수 있었던 작은 성과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고맙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지난주엔 혼자서 강릉에 잠시 다녀왔어요.
언젠가 제가 쓴 글에서 강릉 얘길 한 적이 있는데요. 서울에 살 때는 바다를 보고 싶을 때마다 강릉에 갔다 오곤 했거든요. 제주에 내려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정확히 3년 전 10월 말이었고, 그곳에 저 혼자만의 타임캡슐을 묻어두고 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제주바다를 옆에 두고 살면서도 강릉은 늘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서울을 경유해서 가야 되니까 그 거리가 몇 배쯤은 더 멀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 그렇게 다시 가고 싶었던 강릉을 3년 만에 찾아갔고 그곳에서 어린 날의 저를 마주하고 왔어요.
그곳에 도착한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어요.
거긴 그냥 강릉바다가 아니라, 저의 청춘 한 조각이 숨 쉬던 공간이었으니까요.
모든 것들이 여전히 그대로라서 다행이었고, 3년 전의 저를 언니처럼 안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꿈꾸던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비록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또다시 만나게 될 미래의 저를 위해서 지금의 저를 묻어두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제가 꿈꾸는 미래의 저를 만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출간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서 보내고, 이렇게 여러분들께 편지를 씁니다.
애초부터 책 출간을 서둘렀다면 올해 안에 책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첫 책이니만큼 빨리 손에 받아 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언제나 저의 소신껏 '속도보다는 방향'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성을 기울이고 싶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아주고 함께 해줄 출판사를 만났습니다.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봄, 꽃이 필 무렵에 저의 첫 번째 책을 만나게 될 거예요.
그동안 제 글을 유심히 읽었던 분들이라면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다분히 현실적인 꿈을 꾸는 사람이라서 첫 책에 대한 허무맹랑한 기대는 없어요. 다만 이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제 스스로 부끄럽거나 어딘가에 내놓기 망설여지는 책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출판사와 독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는 모바일로 읽는 독자를 배려하다 보니 긴 에피소드를 덧붙였다가 줄여서 요점만 간단히 쓴 글도 있었고, 다소 무거운 주제나 사적인 이야기를 쓰려다가 망설임 끝에 묻어둔 것들도 있었는데요. 책을 통해 좀 더 다양하고 속 깊은 제주이야기를 전해드리도록 할게요.
당분간 책 준비를 위해서 제주 이야기는 연재를 중단하게 됐고요, 아쉽지만 수상 이후에 쓴 몇 편의 글들은 비공개로 전환해서 더 이상 보실 수 없게 됩니다. 기존 독자님들이라면 이미 다 보셨을 테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실 거예요. 그렇죠? ^^
대신 책이 출간된 이후에는 책에서 빠진 이야기들을 비밀 보따리처럼 풀어드릴 생각이고요, 저의 다른 매거진은 짬짬이 계속 연재될 테니까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혹시 저의 제주 일상이 궁금하시거나 따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 분들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개별적인 소통이 가능하답니다.
앞으로 책 준비하면서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이렇게 또 편지할게요.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나요...♥
2016.11.07.
제주에서 자유지은 드림.
https://www.instagram.com/jeju_ji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