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오랜만...인가요?
오늘은 그냥 소소하게 일상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약간 자화자찬같은 이야기를 하려니 살짝 낯간지럽기는 하네요.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듣는 말 중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은요,
"역시 긍정적이야." 그리고 "어쩜 말도 그렇게 예쁘게 하니?" 랍니다. 하하하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제가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항상 최상과 최악의 상황을 함께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어떤 일을 할 때도, 아주 잘 됐을 경우와 보통의 경우, 그리고 잘 안 됐을 경우의 상황을 미리 예상해보고 추진하는 거죠. 물론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다 잘 되고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길 바라며 "잘 될거야"를 외치지만, 모두 내 마음처럼 되기란 쉽지 않잖아요. 그럴 때도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며 크게 실망하거나 쉽게 낙담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효과가 있는 거죠. 비록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삶의 순간들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건 '최악의 상황은 항상 나를 빗겨간다'는 안도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제주에서의 생활도 그런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이상적인 큰 그림도 있었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감당해야 할 것들도 마음 속에 있었어요. 하지만 잘 안 된다고 해봤자 그것도 경험이니 그러면서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크게 손해볼 게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누구나 그렇듯이 살다보면 모든 게 뜻대로 풀리는 것 같다가도 별 것 아닌 돌뿌리 걸려 넘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순간들마다 괜찮다고 말할 수 있고, 이만하길 다행이다 생각할 수 있다면 진짜 어디서든지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에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요즘 준비하고 있는 책에 들어갈 사진을 선별하고 있었는데 사용하던 노트북이 갑자기 꺼지더니 결국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 순간에는 황당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어요. 이미 5년을 쓴 노트북이라 최근 들어 소리도 많이 나고 힘들어하길래 그렇찮아도 내년에는 노트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던 중이었고, 그래서 그 사건이 있기 일주일 전쯤 외장하드에 백업을 해뒀거든요. 게다가 노트북을 여러대 써봐서 수명이 다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너무 잘 알고 있었죠. 심지어 노트북을 직접 분해해서 안에 있던 하드를 꺼냈고, 며칠 뒤에는 그 노트북 안에 있던 데이터까지 모두 안전하게 저의 또 다른 외장하드가 됐지요.
이 과정에서도 제가 '다행이고 감사한 것'은 세 가지 였어요.
첫번째는 원고를 작성하던 중이 아니라, 이미 원고를 다 넘긴 상황이었다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대부분의 자료가 이미 백업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세번째는 메인으로 쓰던 i7 노트북이 망가졌지만, 다른 노트북(비록 골동품이지만)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안절부절할 상황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죠. 하필이면 작업 중에 일이 터져서 번거로움에 더해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일단 노트북의 생명이 다했다는 걸 확인한 이후로는 정말 태연한 마음으로 뒷 일을 처리했어요. 최종원고는 클라우드에 있고 사진은 외장하드에 있으니,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었거든요. 늘 이렇게 최악의 상황이 저를 빗겨가곤 해요. 하하하. 별 거 아닌 에피소드지만 똑같은 일이 원고를 마감하던 중에 벌어졌다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했을 거예요. 매일 매일 작업한 내용을 USB에 저장하기는 했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다보면 내가 하루 전에 뭘 고쳤는지 일일이 기억할 순 없으니까요.
어쩌면 이렇게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의 이야기는 저만의 것이 아닐 거예요.
생각하기에 따라서, 혹은 마음 먹기에 따라서,
우리 모두는 언제나 최악을 피해가는 행운을 얻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근래들어 뒤숭숭한 우리나라의 현시국과 뉴스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다행이다."
그런 일들이 알려져서 다행이고, 시대가 조금은 바뀌어 있음에 다행이고,
무엇보다 가장 다행인 것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었어요.
하물며 작은 가게도 주인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직원들이 대충 대충 일하는데,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 중에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특히 세대별로는 20-30대의 투표율이 가장 낮지요.
그런데 이번에 광장에 나온 사람들 중에 청년 세대와 청소년 세대가 많은 걸 보고
앞으로 우리 정치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가웠습니다.
우리 모두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봐요.
아참, 그리고 새로운 노트북은 아직 못 샀어요.
이 글은 아이패드로 쓰는 거예요. 가로모드가 지원되서 좋아요.
골동품 노트북은 시끄러워서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있어요. 하하하
다음에 살 노트북은 반드시 정숙한 팬리스로 사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네요.
(그램을 살까 했더니 발열이랑 소음 이슈가 있더라고요. 추천할만한 제품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