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캘리그래피
요가원 문을 닫고 나오려다 다시 가방을 의자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컴퓨터를 켜 자리에 앉았다. 지금의 이 기분을 기록하기 위해서. 쓸모에 대하여 남겨두고자.
다행히 어제저녁엔 윤윤이들이 기침감기에도 잘 자주 었고 그 덕분에 나도 푹 잘 잤다. 지난주엔 윤성이가 내내 아파서 데리고 있느라 오전 수업을 다 대강으로 돌렸지만 그래도 이번 주엔 여전히 콜록이고 훌쩍이긴 해도 어린이집에 갈 수 있으니 나도 내 일을 할 수가 있다. 다시 매트 위로 돌아와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진다. 감사한 순간.
오늘 아침 수업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아마 전화를 거셨다가 수업인 걸 알고 금방 끊으신 거겠지. 수업을 마치고 전화를 드리니 전에 보낸 바지락 다 먹었으면 또 보낼까 하는데 어떠냐고 물으셨다. 이웃들과 나누고도 많이 남은 냉동실의 바지락을 떠올리며, 또 보내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해산물을 즐기지 않는 남편 덕에 싱싱한 바지락은 다 내 차지임에도 가족들이 손을 안대디 나도 덩달아 안 먹게 된다. 언젠가 혼자 있을 때 요리해 먹을 수 있겠지 뭐,
윤솔이 책 이야기, 감기 이야기, 수영 이야기 등을 하면서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이고, 네가 고생이다. 애들 데리고 다니느라'
애들 데리고 다니는 게 바쁜 일상이긴 하지만 고생까지는 아니고, 그것이 내 몫이자 삶이자 기쁨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항상 어머니는 저런 식의 문장으로 나를 위로하려고 하신다. 다행히 그 바쁜 와중에 윤성이가 어린이집에 있고 윤솔이가 수영하는 금요일은 유일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다. 엄마에게도 스위트한 50분. 간간히 유리창으로 음파음파 하는 솔이를 카메라에 담기도 하면서 벌써 5월의 책을 절반이나 읽었다. 그 시간이 정말 달콤하다고 마침, 어제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그 이야기를 꺼내신다.
솔이 수영 가 있는 그 시간에 뭐라도 하면 좋다고. 그래서 나는 내 뿌듯한 마음을 담아, 솔이 수영 가면 저는 책을 읽을 수 있어요!라고 말했더니 허허 웃으신다. 그리고 뭐더라 켈리그라피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걸 그려서 돈도 잘 번다고, 뭐라도 그 시간에 하면 좋다는 말을 세 번 정도 반복 하셨다. 나는 기가 차서 어머니께 본인이 직접 해 보시라고 말씀드렸다. 안 그래도 그림을 그리시니 켈라그리피 정도야 쉽지 않으시겠냐 했더니 뭐 이제 다 늙었는데 라는 말로 허허 웃으셨지만 다시 한번 마지막으로, 너도 뭐라도 해라는 당부를 하셨다.
그 마지막을 기록하며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저 문장에서 '뭐라도' 보다 '해라'는 동사에 목이 잠긴다.
과연 우리는 왜 태어나 살아가는 걸까? 그냥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삶을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행복하기 위해? 부자가 되기 위해? 아니면 '무엇'과 '왜'라는 질문에 끝없이 답을 찾기 위해?
정말 모르겠다. 애초에 무엇이 나의 순수한 삶의 목적이었는지. 타인이나 사회의 기대, 요구가 나의 태초의 욕망이었던가 헷갈리기도 한다. 나는 아직 부자가 되러면 한 참 멀었고, 행복해지려면 더 한 참 멀었다고 느껴지는데 시어머니 말대로 정말 뭐라도 '해야'하는 걸까.
이렇게 생각이 산으로 가려는 찰나, 거울 속에 땀으로 지워진 화장을 바라본다. 방금 나는 한 시간의 노동으로 돈을 벌었고, 비록 그 노동의 댓가를 합리적으로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상황은 못되지만 그래도 내 몫을 채우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그 일이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일이며, 심지어 소중하기까지 하다. 더 심지어는 엄마라는 자리에 요가원 일은 늘 양보를 강요받으면서도 놓치지 않고 둘의 균형을 잡으며 버티고 있다.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스스로 살아갈 때, 나의 손이 조금은 덜 필요할 때 나도 내 자리에서 온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희망을 품고.
시어머니는 아실까.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남편만큼의 월급을 벌어오지 못하고, 그저 적자만 면하고 있으면서도 충분히 열심히 정말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아시기는 할까.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아이들 아침 챙겨서 등교시키고, 요가원 업무를 보고, 집에 돌아가 청소와 집안일, 아이들 간식과 가족들의 저녁을 챙겨놓자마자, 하교, 하원, 학원 픽업하러 갔다가 집에 돌아와 아이들이랑 놀고 책 읽고 저녁 챙기고 씻기고 공부하다가 죽은 것처럼 잠드는 내 삶 속에 단 50분의 '여유'있는 독서 시간이 _ 아이러니하게도 솔이의 수영 수업 시간뿐이라는 걸 아시기는 할까. 시어머니 말씀 대로 그 50분 동안 열심히 켈리그라피를 배워 인스타나 스토어팜에 팔아나 볼까, 그러면 내 쓸모가 인정받는 순간이 올까. 쓴웃음이 나온다.
둘째 윤성이를 낳고 채 한 달이 되기 전에 시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셨다. 너도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냐고. 그때 나는 정말 순수하게도 어머니가 육아맘으로서 지쳐가는 내 자아를 걱정해 주시는 줄 알고 이렇게 답했다. 윤성이 두 돌까지 제가 키우고 저도 제가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고. 그랬더니 말 끝나기가 무섭게 그때 시작하면 늦다고 내가 윤성이를 봐줄 테니 그때 바로 돈을 벌 수 있게 지금이라도 준비하라고 하시면서 요즘은 공인중개사가 애 보면서 하기 좋단다 라는 말을 하셨다. 그놈의 에듀윌.
뜬금없이 웬 공인중개사인가 생각해 보니, 애 보면서 하기 좋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_ 나도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해도 애들 걱정, 집안일 걱정 안 해도 되는 시어머니의 아들이 되고 싶다. 그때 조리원에서 막 돌아와 붓기도 안 빠지고 입고 있던 수유복도 선명히 그려지는데 더 선명하고 더 날카로운 건 어머니의 말속에 숨겨진 ' 내 아들만 고생하는 꼴을 어떻게 보니'라는 진심이었다. 마치 입이 하나 더 늘어 아들 등골 휠까 봐 전전긍긍, 산후조리도 채 마치지 않은 며느리를 붙잡고라도 아들 등골을 보호하고자 하는 그 탁하고 이기적인 모성애에 숨이 막힌다. 뭐라도 해야 하는 내 삶을 도려내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다. 어디서든 지금보단 더 편안히 숨 쉴 테니.
이 일이 3년 전이였는데, 요가원을 열고 2년이 흘렀고 그때 젖먹이가 세돌을 지나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지금 여전히 나는 나의 쓸모에 대해 위협받는다. 켈리그라피라, 그놈의 인스타.
나도 나중에 윤성이 장가가면 저렇게 노망 난 시어머니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