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와 지렁이

당신의 이야기

by 뚜솔윤베씨

올해 여름부터 내 마음엔 콘크리트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고 있다. 여름 방학을 맞아 시댁 시골에 갔을 때 시할아버지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한 적이 있다. 따라오려는 솔이도 뿌리치고 그냥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어릴 때의 설렘으로 페달을 밟았다. 시골은 시골이다. 사전에는 시골의 의미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 도시에서 떨어진 지역.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덜 돼 자연을 접하기가 쉬운 곳'


사방이 자연이다. 시야에 막힘이 없다. 땅과 산, 하늘이 전부다. 사람도 없다. 그게 왜 이리 설레게 느껴지는 걸까. 시댁 시골이라 정겨움은 없지만 자연이 주는 해방감은 너무 벅차다. 그렇게 동네 몇 바퀴를 돌며 내 속도에 모자가 날아가기도 하고 방앗간도 스치고 개울가도 서성이는데 마음 한편이 자꾸 시렸다. 사방이 열린 이곳에서 내 시선은 자꾸만 바닥으로 향했다. 그것도 딱딱한 콘크리트 위로. 그리고 갈라진 콘크리트 사이로 싹을 틔운 이름 없는 풀꽃들.


나는 지금 느끼는 이 해방감이 왜 이렇게 달콤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실 어느 순간 나는 어떤 것도 생생하게 느낄 수 없었다. 뭐랄까, 내 마음 위에 콘크리트가 천천히 굳어가는 과정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 예전에는 이런 말도 사실 꺼내기 두려웠는데 이제는 나조차 담담해져서인지 스스럼없이 입 밖으로 내뱉기도 한다. 근데 시골에서 마주한 콘크리트 위 풀꽃들을 보는데 순간 나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콘크리트 안에 담긴 고운 흙이 마치 엄마가 된 나 같았고, 갈라진 틈 사이로 뚫고 올라온 저 작은 풀꽃들이 솔이와 윤성이 같았다.





그렇게 눈과 마음에 그 장면을 담고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한 편으로는 조급해졌다. 아마 지금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어서 편안했을 테고, 얼른 콘크리트를 부수고 저 풀꽃들이 제 뜻대로 자유로이 자라도록, 튼튼한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에 조급함이 들었을 테다.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두껍고 딱딱한 껍질을 부수는 일. 그 일이 내내 내 마음속 숙제로 자리한다.


어떻게 하면 다시 숨 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고운 흙으로 아이들에게 훌륭한 대지가 될까 이 생각을 하면 눈앞에 생생한 이미지가 그려진다. 콘크리트가 부서지는 모습. 그 안에 포슬포슬 비옥스러운 땅을 만지는 모습. 실제로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 중 하나가 돼버렸다. 남편과 이 이야기를 하며, 어떻게 이걸 요가와 이을 수 있을까 같이 고민하기도 한다. 남편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끼지는 않겠지만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에 대해선 언제나 응원을 하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를 흘리는 것 같이 내 말 끝나기가 무섭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만 (수다쟁이 김허니) 그래서인지 나도 마음 편하게 수시로 이 콘크리트 이야기를 꺼낸다.



솔이도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콘크리트 사이의 풀꽃들이 자기들 같다는 말이 인상 깊었는지 산책만 나가면 이름 모를 풀꽃들 사진을 찍어온다. 한 동안은 발걸음 떼기가 무섭게 콘크리트 사이 풀꽃이 있어 똑같은 사진을 연사처럼 계속해서 찍어대기도 했었다. 얼마 전엔 유치원 앞 육교 계단 사이에 난 잡초 하나를 찍어왔는데 작고 단단하고 귀엽고 앙증맞게 꼭 윤솔이 같기도 했다. 이쯤 되다 보니 이제 이 콘크리트 이야기가 나오면 무슨 동화책 리뷰하듯 작은 대화가 이어진다. 언젠가 엄마는 콘크리트, 윤윤이 들은 풀꽃 이렇게 하나씩 가졌는데 김허니의 역할이 없어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허니는 도대체 내 인생에 무엇일까? 허니는 뭐지? 이렇게 물었더니




저녁밥을 입에 가득 물고 환하게 웃으며 남편이 말했다. 지렁이라고. '비옥한 토양의 신, 토룡 : 지렁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입에 물고 있던 밥을 오므리며 맞다!!!! 소리쳤다. 정답이다. 남편은 내 삶의 지렁이 같은 존재다. 꾸물꾸물 이곳저곳 길을 만들며 그곳으로 숨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 내가 콘크리트 안에 있으면서도 꽃을 피우게 나를 북돋아주는 사람. 오늘 글은 이 지렁이를 기록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내가 꿈꾸는 내가 되었을 때, 진짜 콘크리트 밖으로 숨 쉬게 될 때 꽃도 피고 나무도 자라고 그 아래 지렁이가 꾸물거리는 모습을 그려본다. 이 그림에서 내 지분이 너무 많긴 하지만(히히)


얼마 전에 요가원 프로젝트로 요가와 책, 그리고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가 사실 내 콘크리트 부수기의 첫걸음이다. 내 안에 있는 걸 나누고 나를 드러내 마주하고 받아들이기. 서툴겠지만 조금씩 땅땅땅 망치질하듯, 깨부술 테다. 내가 꿈꾸는 내가 될 테다. 지렁이랑 같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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