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뿌리
1.
바다 냄새가 났다. 지안은 코끝을 찌르는 찝찔하고 비릿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잠에서 깼다.
고속버스 창밖으로 시퍼런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지안의 눈에는 그저 거대한 멍자국으로 보였다.
지안은 바다가 싫다. 정확히는 바다 짠내가 밴 이 공기가 싫었다.
버스는 곧 터미널에 도착했고, 지안은 택시로 갈아탔다. "해령리요" 택시 기사는 돌아 나올 때 빈 차로 나와야 한다며 투덜거렸다. 지안은 대꾸 없이 창밖을 응시했다. 해령리. 지안이 나고 자란 곳이자, 떠나온 곳.
마을은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해풍에 깎여 모서리가 닳아버린 돌담, 촌스러운 파란색 페인트가 벗겨진 슬레이트 지붕들. 그 가난하고 정지된 풍경이 지안의 숨통을 조여왔다.
사실 지안의 방문은 예정보다 일렀다. 10년 만에 먼저 건넨 '가겠다'는 지안의 연락이 화근이었을까?
딸이 온다는 소식에 들떴던 탓인지 지안은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어머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예정보다 며칠 더 일찍 내려와야 했다.
마을 어귀 정자에 노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백발, 화려한 꽃무늬 몸빼 바지. 굽은 허리로 미역 따위를 말리는 건조대 같은 것을 고치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지안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연세가 가장 많은 '초록 대문 할매'였다.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눈꺼풀이 처져 흐릿한 눈을 크게 뜨고 지안을 올려다보았다. 이내 듬성듬성한 치아를 드러내며 반갑게 웃었다.
"아이고, 이게 누구고. 지안이 아니가! 진짜 오랜만이네!"
할머니가 반가움에 엉거주춤 일어나려 했다. 지안은 한 걸음 물러섰다. 가까이 오면 짠내가 옮을 것 같았다.
"아니에요, 앉아 계세요. 집에 일이 있어서 온 거예요."
지안은 건조하게 대답했다. 할머니는 그런 지안의 말투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그래, 일이 있지.. 얼른 가봐라. 느그 아부지, 니만 목 빠지게 기다린다."
지안은 할머니의 거칠고 투박한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2.
지안의 집은 마을 중턱에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배를 탔고, 어머니는 그물을 기웠다. 사람들은 지안의 아버지, 동만을 두고 "해령리 파도"라고 불렀다. 짠물에 절어 변해버린 피부와 깊게 파인 주름이 꼭 거친 파도를 닮아 생긴 별명이었다.
어머니는 옆 마을 방앗간 집 외동딸(숙경)이었다. 아버지의 노름빚 때문에 방앗간이 넘어가면서, 도망치듯 이곳 해령리로 시집왔다고 했다. 바다 일이라곤 모르던 여자가 갯지렁이 만지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이 삶에 순응했다.
태풍이 불면 집어삼킬 듯한 바다를 보며 떨었고, 남편의 배가 돌아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밥상을 차렸다.
그것이 어머니가 낯선 해령리에서 터득한 나름의 방식이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을 올라갔다. 대문도 없이 담벼락만 덩그러니 남은 집. 마당에 있던 감나무가 사라진 것을 빼면 모든 것이 지안의 기억 속에 그대로였다.
"왔나? 오는데 고생 안 했고?"
어머니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마중 나왔다.
"응, 뭐 괜찮았어. 아빠는?"
지안의 시선은 안방 미닫이문으로 향했다. 문틀이 내려앉았는지 '탁'하고 걸렸다가 한 번 더 힘을 줘야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비릿한 바다 냄새가 살짝 코 끝을 스쳤다. 네모난 방, 네모난 이불, 네모난 베개. 그 속에 아버지가 네모난 짐짝처럼 누워있었다.
"으으..어어.."
초점 없는 눈동자가 지안을 향했다. 입술이 달싹였지만 나오는 것은 의미 없는 소리였다.
"니 아빠가 지안이 와서 좋은가 보다. 말을 다 하네."
어머니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안은 짐 가방을 내려놓고 터미널에서 급하게 산 홍삼 박스를 내밀었다.
"배고프지? 엄마가 니 좋아하는 생선 구워놨다. 밥부터 먹자."
생선. '니 좋아하는'이라는 수식어에 지안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지안은 한 번도 생선을 좋아한 적이 없었다.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이라곤 팔다 남은 생선뿐이었기에, 살기 위해 먹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난 삼겹살이 좋아요.'라고 반찬 투정을 하기엔, 지난 10년의 공백이 너무 컸다.
밥상 위에는 이름 모를 생선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눈알이 하얗게 익어버린 생선 대가리가 지안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지안은 깨작깨작 살점만 조금 떼어내며 물었다.
"아빠는 왜...갑자기 저렇게 된 거야?"
어머니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TV 속 외국 영화에서 폭탄이 터지는 굉음이 정적을 깼다.
"그날도 배를 타고 나가더만, 만선으로 돌아왔지. 기분 좋게 들어왔는데... 갑자기 저 창고 있잖아. 거기에 뭘 숨겨둔 게 있다면서."
"창고? 숨겨둔 거?"
"그래. 밥 먹고 찾으라 해도, 성격 급한 양반이 사다리 놓고 올라가서 뒤지다가.. 쿵 소리가 나더라고,
뇌출혈이라더라. 안 하던 뱃멀미 한다 할 때 병원을 갔어야 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뭘 알기나 해야지.."
어머니의 시선이 미닫이문 너머 남편에게 닿았다.
"운명이지 뭐, 해령리 파도의 운명인 거지. 그래도 죽지 않고 집에 온 게 어디고, 감사해야지."
'해령리 파도'가 바다를 그저 바라만 보게 되었는데, 감사해야 한다니 지안은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그럼 이제 어떡할 거야? 엄마 혼자 감당이 돼?"
"해야지 어쩌겠노."
체념과 수용이 섞인 어머니의 대답에 지안은 입을 닫았다.
3.
어린 시절, 아버지는 만선인 날이면 술 냄새와 비린내가 뒤섞인 몸으로 지안을 껴안았다.
지안은 그 냄새가 끔찍했다. 아버지가 안을 때마다 거대한 바다가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지안아. 니는 여기가 싫제?"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물었다.
"니가 아무리 싫어서 도망쳐도 말이다.. 니 피에는 바다가 흐른다. 그걸 '뿌리'라고 하는 기다."
"난 도시 가서 다 잊고 살 거야."
어린 지안이 쏘아붙이자 아버지는 껄껄 웃었다.
"나무뿌리는 땅에 있지만, 바다의 뿌리는 사람을 잡고 우리 가족을 잡고 있는 기다.
니가 힘들 때 결국 니를 지탱해 주는 건 이 바다일 끼다."
아버지는 지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지안은 그 말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지안에게 바다는 그저 벗어나고 싶은 가난일 뿐이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지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울로 떠났다. 그곳에서 지안은 바다를 잊기 위해 생선을 먹지 않았다.
4.
지안은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뭘 찾으려다 저 사달이 났는지 확인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먼지 쌓인 창고는 엉망이었다. 쓰러진 사다리 옆으로 낡은 어구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녹슨 라디오, 찢어진 그물, 빛바랜 선장 모자... 그리고 구석에 낡은 박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엎어진 상자 틈으로 무언가가 삐져 나와 있었다.
지안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먼지를 털어내자 하얀색이 드러났다. 운동화였다. 이미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변색된 운동화. 사이즈는 240. 지안이 고등학교 내내 신었던 낡아빠진 캔버스화의 사이즈와 같았다.
상자 안에는 꼬깃꼬깃한 현금 뭉치와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삐뚤빼뚤한 엉성한 글씨였다.
[우리 지안이, 좋은 데 갈 때는 좋은 신발 신고 가거라.]
10년 전, 지안이 짐을 싸서 나갈 때 아버지는 바다에 나가 배웅을 하지 못했다. 지안은 아버지도 바다의 가난이 내심 싫어서 자신을 잡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잡지 않은 게 아니라, 거친 바다가 싫다는 딸을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보내주려고 했다는 것을 빛바랜 운동화가 말해주었다.
그가 배에서 돌아왔을 때 딸은 이미 떠나고 없었고, 사두었던 운동화는 전해지지 못한 채 창고 깊숙이 숨겨졌다. 아버지는 지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10년 묵은 이 운동화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말한 '뿌리'는 지긋지긋한 가난이나 비린내가 아니었다. 아무리 멀리 가도 끊어지지 않는, 투박한 사랑 그것이 바다의 뿌리였다.
지안은 자신이 도망치려 했던 것이 바다가 아니라, 아버지의 거친 손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 거친 손길이 자신을 등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도시에서의 삶도 전쟁이었다. 지안은 늘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고향을 혐오하며 버텼다.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하고, 돌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해야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은, 돌아올 곳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창고 입구에 서 있었다. 지안의 손에 들린 운동화를 보고 덤덤하게 말했다.
'니 아빠가 그걸 아직도 갖고 있었나 보네. 참, 미련한 양반... 너무 마음에 담지 마라. 그거 아니었어도 쓰러질 양반이었다."
어머니의 무심한 위로가 오히려 지안의 마음속 파도를 잠재웠다.
지안은 운동화를 품에 꼭 안고, 엄마 숙경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 지독한 짠내를 견뎠을까.
"엄마는 여기가 싫지 않았어? 빚에 팔려오듯 와서 평생만 그물만 기웠잖아."
"와 안 싫었겠냐. 처음엔 숨 쉴 때마다 이 소금 냄새가 폐를 찌르는 것 같아서 매일 밤 울었다.
짠물에 들어와 살라니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았지."
숙경은 창고 문턱에 기대 요동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내 파도가 잠잠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근데, 살아보니 알겠더라. 내가 내리는 곳이 살아가는 곳이라는 걸, 살다보니 내 발에서 어느 날 짠내가 나대. 그때 알았다. 나는 여기 해령리에 뿌리를 내렸구나."
"....."
"그래 뿌리를 새로 내렸지. 그래도 가끔은 방앗간의 그 고소한 냄새가 떠오른다. 그 냄새를 기억하면서 그 힘으로 여기서 짠내 맡으며 버티고 뿌리를 내린 거지."
지안은 그동안 숙경이 그저 체념한 채로 살아왔다고만 생각했다. 엄마처럼 순응하지 않겠다며 도망치듯 떠났던 자신의 지난날이,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가슴을 콕콕 찔렀다.
숙경이 지안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주며 말했다.
"니 마음 뉘일 곳, 니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 거기서 꼭 안 살아도 생각만 해도 되는 곳. 그곳이 어디든 뿌리는 다 이어져 있을 기다."
5.
지안은 운동화를 품에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천장을 보고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네모난 이불속에 갇힌 아버지가 작은 웅덩이에 갇힌 것처럼 보였다.
지안은 아버지에게 창고에서 찾은 낡은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아빠 이거 찾으려고 그랬어..?"
아버지의 눈동자가 운동화에 머물렀다. 초점 없던 눈에 미세한 물기가 어렸다. 지안은 운동화를 자신의 발에 대보았다. 10년 사이 발이 부었는지, 신발이 작아 보였다.
"어...으으"
"아냐, 아빠. 지금 발이 부어서 그래, 딱 맞을 거야. 딱 맞는 신발이야."
지안은 아버지의 거친 손을 잡았다. 까끌까끌한 굳은살이 손바닥에 닿았다. 예전엔 징그럽게 싫었던 그 감촉이 지금은 잔잔한 물결처럼 지안의 손을 스쳤다.
밖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예전처럼 시끄럽게 들리지 않았다. 마치 아빠가 지안에게 무어라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당에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들 밥은 묵었나! 내가 옥수수 쪄왔다!"
지안은 아버지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었다. 그녀는 며칠 더 이곳에 머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도시로 돌아갈 것이다. 바다를 피해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지안은 알고 있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자신의 발 밑에는 보이지 않는 바다의 뿌리가 단단하게 뻗어 있다는 것을. 언제든 지치면 돌아와 쉴 수 있는 짠내 나는 품이 있다는 것을.
지안이 창문을 열었다. 노을이 지는 바다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멍자국 같던 바다가 이제는 황금빛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비린내가 났다. 하지만, 역하지 않았다. 그것은 가족이 살아온 냄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