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꾹 눌러쓴 펜 끝에 그어진 감정
대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부모님이 노트북을 하나 사주셨다. 어깨가 빠질 만큼 무거운 구형 노트북이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과제를 하려면 필수품이었기에 나는 매일 그 묵직한 짐을 들고 강의실로 향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대학 시절 내내 그 노트북을 오직 '과제 제출용'으로만 썼다. 강의실 책상 위에 펼쳐진 건 언제나 노트북이 아니라 노트와 펜이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학원 대신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 했던 나는, 화면 속 선생님의 말을 놓치지 않으려 필기에 집착했다. 샤프, 형광펜, 볼펜... 필통 속 필기구들은 내 유일한 무기였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마음을 형형색색의 펜으로 꾹꾹 눌러 담았던 것 같다. 손이 아파도 받아 적는 것만이 공부라 믿었다.
대학 강의실 풍경은 사뭇 달랐다. 대부분의 학생은 가벼운 노트북이나 태블릿 PC를 두드렸고, 스마트폰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필기했다. 교수님도 그 속도에 익숙한 듯 숨 쉴 틈 없이 강의를 이어가셨다. 그럼에도 나는 손필기를 고집했다. 노트북이 무거워서가 아니었다. 펜을 잡고 종이 위에 사각거리는 마찰을 느낄 때의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을 들을 때는 아무리 속도가 빨라져도 글씨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정성을 다했다.
반면, 지루한 교양 수업이나 싫어하는 내용이 나오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글씨는 삐뚤빼뚤 춤을 췄다. 굳이 줄이지 않아도 될 단어를 O, X로 대충 날려 적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손글씨를 놓지 못한 이유다. 키보드로 치면 '맑은 고딕'으로 통일되어 버릴 글자들이 손 끝에서는 내 기분에 따라 춤을 춘다. 내가 잡은 펜 끝에는 내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초등학교 때 일기장을 펼쳐 봐도 그렇다. 나는 방학 숙제로 내주는 일기 쓰기가 정말 싫었다. 선생님이 검사하고 빨간 펜으로 답글을 달아주는 게 부끄러워, 기분 좋은 날이나 자랑할 게 있는 날에만 쓰고 싶었다. 하지만 자랑할 일이 매일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정말 신나는 일이 있던 날에는 샛노란 코팅 연필을 꺼내 들었다. 깍두기공책의 네모 칸에 맞춰 적 듯, 받침 하나까지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썼다. 반대로 억지로 써야 하는 날엔 글씨부터가 달랐다. 줄은 삐뚤어지고 내용은 세 줄을 넘기지 않았다. 선생님 눈을 의식해 감정을 숨기려 해도, 하기 싫은 마음은 펜 끝을 타고 종이 위에 그대로 드러났다.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감정을 너무 쉽게 숨길 수 있다. 메신저로 친구와 대화할 때를 떠올려 보자. 무표정한 얼굴로 'ㅋㅋㅋ'를 치고, 전혀 슬프지 않은데도 영혼 없는 'ㅠㅠ'를 날린다. 상대방이 내 얼굴을 보지 못하니, 상황에 맞는 이모티콘 하나면 적당한 공감과 리액션을 연기할 수 있다.
이런 연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목소리의 떨림이 전해지는 전화 통화마저 부담스러워졌다. 내 영혼 없음이 들통이 날까 봐 긴장됐다.
얼마 전, 고마운 분께 선물을 하며 편지를 쓰려다 당황했던 적이 있다. 메신저로는 그렇게 술술 나오던 감사하다는 말이, 막상 예쁜 편지지 위에서는 턱 막혀 써지지 않았다. 볼펜을 쥔 손이 머뭇거렸고, 그 망설임은 글씨체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동안 내가 메신저로 쏟아냈던 수많은 말은, 진심이라기보단 사회생활을 위한 '텍스트 데이터'에 불과했던 걸까?
통신기기가 없던 시절, 옛사람들이 편지 한 통에 울고 웃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종이 위에 꾹꾹 눌러 담은 글씨의 깊이, 쓰다가 멈칫한 잉크 자국, 고쳐 쓴 흔적에서 그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나는 다시 수첩을 펼치고 볼펜을 잡는다. 할 일, 일기, 잡생각들을 적는다. 쓸 때는 모르지만 다음 날 펼쳐보면 내 마음이 보인다. 하기 싫었던 일은 글씨가 날아가고, 설레는 계획은 또박또박 적혀 있다. 디지털 화면 속 매끈한 폰트 뒤에 숨어있던 내 진짜 감정들이, 삐뚤빼뚤한 손글씨 속에서 비로소 숨을 쉰다.
디지털 시대, [전송] 버튼 한 번으로 썸을 타고 사랑을 고백하는 세상이다. 편리하고 세련됐다. 하지만 가끔은 사랑하는 이가 떨리는 손으로 눌러쓴 투박한 편지를 읽고 싶다. 이모티콘 뒤에 숨지 않고,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적어 내려간 그 진심의 무게를 손끝으로 느껴보고 싶다.
여전히 대형 서점에 가면 다이어리와 펜들을 가득 채운 코너를 볼 수 있다. 우리가 그것들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디지털 세상 속에서 점점 흐릿해져 가는 '나'와 '너'를 확인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몇 초면 전송되는 편리한 메신저 대신, 고민하고 망설이며 그은 한 줄의 문장이 그리워지는 날. 책상 구석에 굴러다니는 펜을 잡아보자.
글씨의 흔들림, 종이를 파고든 펜 자국, 잉크 냄새. 마지막으로 완성된 종이 뒷면을 손끝으로 쓸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올록볼록 튀어나온 그 자국들이, 당신의 마음이 가닿고자 했던 발자국이라는 것을
이미지 : 생성형 AI Gemini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