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귀가 잘린 그 길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제법 바람이 쌀쌀해진 가을 무렵이었다. 동네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을 대대적으로 가지치기했다. 한 동짜리 아파트치고는 나무가 꽤 빽빽했는데, 덕분에 길을 지날 때마다 저층 베란다가 숲에 가려진 듯 보이지 않았다.
작업이 끝나고 다시 그 길을 지났을 때, 길 자체는 환해졌지만 나무들이 너무 짧고 뭉툭하게 잘려나간 탓에 가려져 있던 저층 세대의 거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었다.
가지치기라는 말보다는 '절단'에 가까웠다. 나무라는 가림막이 사라지자 보이고 싶지 않았을, 혹은 내가 굳이 보지 않아도 될 사적인 공간들이 새어 나왔다.
대낮에도 환하게 불을 켠 집, 하루 종일 TV 불빛만 깜빡이는 집, 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집... 그건 서울의 주택난이 빚어낸 어쩔 수 없는 풍경이었지만, 나는 황급히 시선을 발끝으로 돌렸다. 나무가 사라진 뒤로는 그 길을 지날 때 고개를 숙이는 버릇이 생겼다.
유독 바람이 매섭던 어느 날. 볕은 들지만 온기는 없는 차가운 햇살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나무에 기대어 식빵을 굽고 있었다. 배와 다리는 흰색, 등은 회색빛이 감도는 털을 가진 녀석이었다. 어디서 거친 싸움을 치른 건지 오른쪽 귀 끝이 뭉툭하게 잘려나간 뒤 새살이 돋아 있었다.
핸드폰 카메라를 들고, 연신 앞발로 그루밍하는 녀석을 찍으려는 순간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길고양이 특유의 살가움도 없었고, 그렇다고 하악질을 하는 사나움도 없었다. 다만 얼굴에 '고단함'이 묻어 있었다. 마치 세상의 온갖 풍파를 맨몸으로 겪어낸 노인처럼. 동물이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나는 애써 눈을 피해 가던 길을 재촉했다. 녀석의 그 뭉툭한 귀와 고단한 표정은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더 진한 잔상으로 남았다.
다음 날, 같은 자리에서 그 고양이를 다시 만났다. 어제와 똑같은 표정으로 쓰레기 더미를 뒤적이다가, 이내 기지개를 켜더니 날렵하게 담을 넘어 사라졌다. 뒷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평범한 고양이였다. 그 귀는 어디서 다쳤니. 왜 그렇게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니. 사람이라면 묻고 답이라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덜컹거리는 마을버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처음 귀가 잘려 나갔을 때 녀석은 얼마나 아팠을까.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을 때까지 뜨거운 햇볕과 차가운 바람이 얼마나 쓰라리게 환부를 파고들었을까. 지금은 비록 아물었다 해도, '한쪽 귀가 잘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녀석의 얼굴에서 봤던 그 고단함은, 잘려나간 귀가 견뎌냈을 고통의 시간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문득 잘려나간 아파트 앞의 나무들과 오른쪽 귀가 없는 고양이가 겹쳐 보였다.
빽빽했던 나무들은 세상에 들키기 싫은 모습들을 가려주는 '껍질'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 껍질이 뎅강 잘려나가자, 집안의 날 것 그대로가 의도치 않게 노출되어 버렸다.
그 고양이도 그저 햇살 아래에서 그루밍을 하고, 담을 넘으며 평범한 고양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굳이 그 잘린 귀를 자세히 들여다본 순간 '상처 입은 고양이'가 되어버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도망친 건, 어쩌면 자신의 상처를 파고드는 나의 시선이 싫어서였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들키기 싫은 아픔이 있었다. 그 아픔에 새살이 돋아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으니, 아문 상처가 보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위축되어 있었다. 그 아픔을 견뎌낸 흔적이 표정에, 말투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니까.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멀리서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누구나 잘려나간 가지 하나, 뭉툭해진 귀 하나쯤은 품고 산다. 아물어도 티가 나는 상처를 우리는 들키고 싶지 않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고양이는 우리와 다를지도 모른다. 녀석은 거울로 자기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적이 없을 테니까. 지나가며 유리창에 모습이 비쳤을지는 몰라도, 우리처럼 상처 하나하나 뜯어보며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른쪽 귀는 잘려 나갔어도 상처는 아물면 그만, 그저 햇볕을 즐기는 길고양이 일뿐이다.
우리가 복잡한 이유는 상처 그 자체보다 '남들이 내 상처를 어떻게 볼까'를 너무 많이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때로는 아파트 앞 빽빽한 나무처럼 나를 가려줄 가림막이 필요할 때도 있다. 가까운 사이든, 오랜만에 만난 사이든 굳이 그 사람의 가림막을 들추려 하지 말자. 상처가 보이더라도 그 사연을 캐묻지 말고 한 발짝 멀리서 바라봐 주자.
고양이가 잘린 귀를 가지고도 아무렇지 않게 그루밍을 하듯, 상처를 이겨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티가 난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도 없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오늘을 살아가면 된다.
아마 그 녀석은 지금쯤 자신이 다른 고양이와 다를 바 없다 생각하며 자유롭게 담벼락 위를 걷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고양이의 힘든 얼굴을 굳이 뜯어볼 필요는 없다.
*대표 이미지 : 생성형 AI Gemini 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