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캔커피를 몰래 마시지 않는다.

희미해진 기억은 감각이 되어 자리를 채운다.

by 불완젼


"이 놈들! 또 몰래 커피 마셨구나!"


할아버지의 공장 사무실 안쪽에는 큰 보온용 밥통이 있었다. 그 안에는 찾아오는 고객에게 한 잔씩 드리기 위해 할아버지가 따끈히 데워둔 캔커피가 들어있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동생은 유치원을 다녔을 시절로 기억한다. 캔커피를 몰래 빼 마시는 걸 들키면 할아버지는 꼭 저렇게 외치셨다. 입으로는 '이 놈들'이라고 하셨지만, 우릴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표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웃고 계셨을까.



할아버지는 내가 대학생 때 예고도 없이 쓰러지셨다. 기적처럼 중환자실에서 나오셨지만, 할아버지는 예전과 같지 않으셨다.



공장은 운영되지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갔다. 할아버지의 누워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고, 그 시간이 늘어난 만큼 나도 사회인이 되었다. 일 년에 두세 번, 설과 추석 그리고 할아버지 생신 정도나 되어야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누워계신 할아버지는 귀도 잘 들리지 않으셨다. 항상 내 손만은 꼭 잡아주셨다. 일이 많이 힘드냐고 물으시는 듯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몇 번이나 나를 다독여주셨다.



어릴 적 할아버지의 캔커피 말고도 동생과 내가 할아버지의 간식 창고를 탐했던 적이 또 있다.

동그란 모양에 설탕이 발린 빵이었다. 작은 크기의 빵이 여러 알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 빵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나와 동생은 옆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그 빵을 나눠 먹곤 했다. 그때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그 빵을 쉽게 살 수 있었다. 이제는 그 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할아버지는 빵을 여전히 기억하고 계셨지만, 사실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빵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시선이 닿는 벽에는 바다 낚시터에서 대어를 낚아 활짝 웃고 계신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할아버지는 낚시를 참 좋아하셨다.

틈만 나면 저수지로, 바다로 떠나셨다.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허탕 치는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항상 가셨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고기를 잡는 게 목적이 아니라, 답답한 마음을 풀어 내려놓는 할아버지 나름의 방식이었음을.



누워계신 할아버지 시선 끝에 머문 사진 속 낚시하는 할아버지. 그때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같이 사진이라도 한 번 더 봐드릴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추석 몇 주 전, 엄마가 할아버지 상태가 안 좋으시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할아버지의 얼굴은 너무나 낯선 모습이었다. 병원에 모시고 갔지만, 크게 호전되기는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추석이 되어 온 가족이 할아버지를 뵈러 갔다.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으셨다. 대화는 원활하지 않았지만, 가족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나와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온기만으로도 충분한 대화가 되었다.



나는 회사 일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할아버지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하고 웃으며 나를 배웅해 주셨다. 평소라면 "얼른 건강해져서 우리 손주 일 조금만 하게 해 줄게."라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하셨을 텐데, 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그리고 그다음 주,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전날 밤 할아버지는 깨끗이 목욕을 하셨고, 아침에는 밥을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고 했다. 그리고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


아빠가 급히 뛰어들어가 할아버지에게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할아버지를 붙잡고 싶었던 아들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내 기억 속 마지막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나를 배웅해 주던 그 모습이다. 장례가 진행되었고, 염을 마친 할아버지를 뵈러 들어갔다. 순식간에 할아버지와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찰나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애써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고 조문객들에게 의연하게 인사를 하던 나는, 결국 그 앞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관에 들어가시기 전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낯선 병자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온화한 우리 할아버지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통곡은 곧 가족들에게도 전이되어 장례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화장 시간이 되어 할아버지의 관은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할아버지를 볼 수도, 나를 다독여 주던 그 손길도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유리창 너머로 들어가는 관을 보며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의 유골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 작은 몸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평생 구부정한 자세로 일을 하셨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유골함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흘렀다. 할아버지가 계신 납골당에 가서 얼굴을 볼 때마다 여전히 눈물이 난다.


어느 날 문득, 동생이 '오징어 회무침'을 먹고 싶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이다. 엄마가 오징어를 구해 무쳐주셨다. 동생과 나는 한 입 먹고 서로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건 할아버지의 맛이 아니라고.



절에서 할아버지의 옷과 유품을 태울 때 스님이 해주신 말이 떠올랐다. 뒤돌아보고 너무 올면 고인이 좋은 곳에 못 가고 멈춘다고. 그래서 그 말이 생각나, 비록 할아버지의 손맛은 아니지만 할아버지가 만든 메뉴니 할아버지의 것이라 생각하며 씹어 삼켰다.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사진 속에도, 낡은 피아노 건반에도, 녹슨 하모니카에도 남아있다. 캔커피를 보면 할아버지가 떠오르고 낚시하는 사람들을 봐도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이제는 아무리 몰래 캔커피를 꺼내 마셔도 "이 놈들!"하고 호통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아니, 이제는 캔커피를 몰래 숨어서 마실 일조차 생기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내 일상 곳곳에 살아 숨 쉬는 현재진행형이다. 캔커피를 쥘 때 느껴지는 온기, 낡은 피아노 건반에서 나는 소리, 낚시터의 물비린내까지.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억 속에서 조금 희미해진다 하여 더 이상 슬퍼하지 않으려 한다.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남겨준 그 깊고 단단한 사랑의 감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또렷해질 테니, 나는 그렇게 매일 일상 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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