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의 털친구들은 어떤 경우에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반려동물의 예쁨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장비는 없다. 때로는 나의 시선조차 믿을 수 없는 것을. 예쁨을 뛰어넘는 다정함과 선량함은 사랑이 피상이 아님을 알려준다.
반려동물에 있어 ‘최고’나 ‘최애’는 무의미하다. 첫 번째이거나 마지막이라는 것은 그저 그 동물을 만나게 된 순서일 뿐 비교급이 될 수 없다. 모든 반려동물은 ‘각기 다른 이유의 최애’들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화하는 존재기에 세상에 없는 무결한 애정을 갈구한다. 이면을 탐구하는 작가들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의지했다. ‘다센카’는 개와 고양이를 골고루 키웠던 카렐 차페크의 ‘최고 중 하나’였던 개다.
#애거서 크리스티와 피터 https://brunch.co.kr/@flatb201/244
SNS 시대 이전에도 사람들은 최애를 영업할 때 항상 진심이었다. 카렐 차페크도 다르지 않아서 사람 홀리는 그의 정원 예찬은 읽고 나면 상추라도 심고 싶어 진다. 에세이 <다센카>에선 반려동물에 대한 열렬함을 토로했다. ‘다센카를 위한 여덟 가지 옛날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짐작되듯 화자인 작가가 한 걸음만큼, 하루만큼 자라나는 개를 지켜보고 격려하며 개와 함께 하는 삶이 주는 위안을 깨우치는 에세이다.
#카렐 차페크의 정원, 원예가의 열두 달 https://brunch.co.kr/@flatb201/205
차페크 같은 걸출한 작가가 썼다 해도 <다센카>는 특별한 사연이나 드라마를 품고 있진 않다. 시대성으로 인해 품종견 선호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잠시 있었다. 그러나 매일의 관찰, 조그만 걸음마 하나에 담기는 의미부여와 호들갑은 차페크도 우리도 다르지 않다. 생명을 동반하는 삶은 어느 것도 그림 같지 않기에 개의 예쁨 뒤에 가려진 반려인의 뒤치다꺼리는 고난이 아닌 책임을 각인시킨다. 그러나 개로 인한 소란이나 청구서에 대한 투덜거림 조차 은근한 자랑이 묻어난다. 서사나 부연 없이도 온전한 공감으로 몰입할 수 있는 에세이다.
국내에는 <내 친구 다센카>라는 하드커버 단행본이 발행된 적 있다. 당시로선 드문 번역본이었고 요제프 차페크가 그린 일러스트도 빠짐없이 실려있다. 힘들게 구한 절판본은 유치한 제목보다도 북 디자인 때문에 개정판을 고대하게 했다. 얼마 전 나온 페이퍼백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는 너무 간소해 여전히 흡족하지 않지만 차페크의 애정과 호들갑만큼은 온전히 확인할 수 있다.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배우가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
‘시공간을 초월해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작년에 세상을 떠난 나의 개 단풍이에게..’
담담하려 애쓰지만 너무 무겁게 잠겨 이름을 말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순간이 고스란히 이해되었다. 중언부언 행간 사이를 질주하는 그 무수한 갈피들을 알 수 있다.
처음도 아닌데 개가 떠난 후의 일상은 모든 것이 흐릿하다. 처음은 처음이어서 더욱 사무치는 고랑이 파인다. 기대가 없는 하루를 깨닫곤 소스라친다. 이런 자기 연민이 비웃겨서 때로는 고통스러운 순간만이 온전한 인정으로 느껴진다. 낙담은 체념으로 쌓여간다. 머릿속의 황금을 모두 긁어 써버린 사람처럼.
가정법만큼 무의미한 것이 있을까. 그 안에 잠긴 소망에도 매번 피로하다.
그래도 만약, 내게도 그런 날이 온다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겠다. 잠에 취한 채 늘 하던 대로 너희의 정수리에 코를 박겠지. 너희는 뒤엉켜 가로지르면서도 꼼꼼히 오늘 치 첫 번째 산책을 시작할 거야. 주의를 기울여 밥을 주고 자주 줄 수 없던 빵도 큼직하게 나눠 먹을 테다. 우리는 종일 같이 있을 거야. 너희 둘 다 좀 귀찮아하면서도 안도하겠지.
달이 뜨면 뜬 대로 비가 날리면 날리는 대로 하루를 닫는 산책, 그 밤의 공기를 오래 기억할 거야. 하루치 일과를 끝내고 아무 의심 없이 평온 속에 잠든 너희를 내내 지켜볼 거야.
내일도, 그다음 날도, 우리에게 마치 셀 수 없는 내일이 남아있는 것처럼.
개에 관한 이렇게 외진 글을 부러 읽어주시는 분들이라면 분명 약한 것들에 시선을 두시리라 건너짚어봅니다. 기간 대비 모금액이 안타까워 링크 남겨봅니다. 잠들어 있는 콩 한 개(100원)도 가능하니 함께 애써주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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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ášeňka čili Život štěněte (Dashenka, or the Life of a Puppy), Karel Čapek, 1933, 일러스트 요제프 차페크 Josef Capek
내 친구 다센카 (나제통문, 1996, 번역 이영선, 일러스트 요제프 차페크 Josef Capek)
개와 고양이를 키웁니다 (우유, 2021, 번역 신소희, 요제프 차페크 Josef Cap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