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마법
모바일과 OTT 시장의 확장으로 손가락만 까딱하면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 있습니다. 예쁘고 멋진 배우들이 나오고 화려한 효과들이 눈앞에 번쩍이는 화면들에 눈을 뗄 수 없지요. 얼마나 몰입이 되는지 한 번 틀었다 하면 시즌 하나를 앉은자리에서 몰아 봅니다. 분명 며칠 전에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던 것 같은데. 오늘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제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언젠가부터 기념할만한 일이 생기면 사진 먼저 찍는 문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미슐랭을 받았다는 어느 음식점에서, 최애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콘서트에서,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힘들게 올라간 산 정상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야’ 주문을 외웁니다. 마치 찰나의 순간을 반드시 남겨야 한다는 강박처럼요. 행복했던 순간들을 너도 나도 SNS에 업로드합니다. 세상에 멋지고 행복한 사람들만 넘치는 것 같은데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의 SNS에 자극을 받은 나는 더 멋진 사진을 위해 하루를 계획하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저에게 말합니다. ‘나는 요즘 애 키운다고 바빴지. 너는 진짜 재밌게 사는 것 같아 부럽더라.’ 사실 저는 그동안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나도 모르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에게 상처를 준 건 아닐까 생각에 잠긴 날이 있었습니다.
보고 찍는 세상의 시계는 너무나 빠르게 돌아갑니다. 중심을 잡지 않으면 균형을 잃을 것만 같습니다. 마음의 규칙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속도가 너무 빠를 때는 잠시 멈춰가자고. 여유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즈음 독서모임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와는 달리 시간을 직접 조절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햇살이 좋으면 잠시 책을 덮고 햇살의 내음을 실컷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으면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됩니다. 나만의 속도로 주인공을 따라 걷는 일이 어찌나 매력적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글쓰기 또한 그렇습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찍을 때에는 담기 어려운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한 문장, 한 장 혹은 한 권에 담을 수 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으면 지나간 일이 슬로모션으로 천천히 지나갑니다. 당시에는 잘 몰랐던 경험도 생각을 통해 재구성되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던 나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만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나 봅니다. 그냥 두면 눈처럼 쉽게 흩어져 버리는 시간과 감각들을 눈사람처럼 둥글게 뭉쳐 보고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눈사람은 만드는 과정이 더 즐겁기도 합니다. 보고 찍는 시대에 읽고 쓰기를 선택한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