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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Jan 25. 2022

4등에게 보내는 편지

유난히 작고 느리던 너에게

  유난히 키가 작던 넌 학급 친구들과 한 뼘이나 차이가 났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담임 선생님이 그랬다며. 학년을 잘 못 찾아 온게 아니냐고. 교실에서도 운동장에서도 널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너는 항상 맨 앞줄에 있었으니까. 너네 엄마는 네가 작은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았지. 12월 달력을 한 장 남기고 태어난 까닭을 탓하기도 했어. 키가 크는 데 도움을 주는 음식들은 한 번 씩 다 먹어 봤다면서? 그래도 키는 자라지 않았어. 


   가을 운동회에서 멋스러운 깃털을 흔드는 꿈은 감히 꿀 수 없었지. 선생님께서 부채춤은 키가 큰 친구들이  할 거라고 하셨거든. 작은 친구들에겐 꼭두각시가 잘 어울린다면서 말이야. 너의 역할은 항상 연지곤지 찍은 얼굴로 고개 숙이고 우는 연기를 하는 것이었어. 하늘을 보고 부채를 흔드는 친구들을 보며 부러운 표정을 지었지. 내년에 키가 크면 부채춤을 출거라고 다짐하곤 했어. 다리가 짧으니 달리기도 아무리 잘해야 4등. 언젠가 손등에 빨간 도장을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지. 하지만 이내 체념한 얼굴을 했지. ‘아무래도 이번 생은 틀린것 같아’.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어. 이후 체육 시간이면 너는 항상 터덜터덜 걸어 다녔어. 선생님께서는 생활기록부에 체육활동에 대한 의지가 없다고 적으셨지. 다른 사람에게 들켜버린 걸 안 뒤부터 너의 어깨는 더욱 축 쳐지고 말았어.


  하지만 넌 너만의 성벽을 쌓아 가더라. 부채춤이나 달리기와는 달리 앉아서 하는 일을 곧잘 해냈거든. 가령 예를 들면 책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그림 그리는 것을 말이야. 어쩌면 그것들을 누워서 하는 걸 더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너의 왼쪽 겨드랑이가 납작하게 책상에 붙어 있는 날이 많았으니까. 아무튼 너는 그렇게 너만의 세상을 넓혀 갔던 거야. 너는 왜 몰랐던 걸까? 다른 세상을 동경하는 널 보며 나는 조금 속상한 마음이 들었어. 너는 이미 너만의 멋진 세상을 가지고 있었거든. 난 가끔 너의 세상이 부러웠다구. 다른 친구들도 너와 친하지 않아 표현하지 못 했을 뿐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거야. 그러니 너무 속상하지 않았길 바래.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니? 나는 너와 달리 부채춤을 추고 교실의 맨 뒤에 앉았지. 내가 누리던 영광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어. 한나도 광미도 나중엔 키가 쑥쑥 자랐거든. 아마 너도 그랬을 거라 생각해. 넌 지금쯤 얼마나 자랐을까? 아직 나와 한 뼘이나 차이가 날 까? 아니 그보다 내가 동경하던 너의 세상들이 어떻게 변해있을지 너무나도 궁금해.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내 마음 속 영원한 1등은 너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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