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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Jan 26. 2022

기억하고 싶은 얼굴

엄마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엄마는 며칠째 눈을 감고 쌔근쌔근 잠만 잤다. 엄마의 혀는 갈수록 안으로 말려 들어갔다. 중환자실 간호사 여럿에게 엄마가 왜 이러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다.


그보다 앞선 기억은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바라보고만 있던 엄마의 얼굴. 나는 그런 엄마에게 둘째 숙모가 가져다 주신 추어탕에 밥을 말아 떠 먹였다. 방아가 가득 들어 향긋하던 부추전도 입에 넣어 드렸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식사를 하는 동안 엄마는 나를 응시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이상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학교에 지각한다 말이야!’ 나와 학업에 관심이 있던 엄마에게 큰소리를 치면 엄마의 정신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아프다.


결혼을 하고 할머니집에 맡겨 두었던 짐을 챙겨왔다. 짐을 정리하다가 15년 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이 눈에 들어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바스러져 가는 충전기를 연결해 전원버튼을눌렀다. 사진첩에는 똑같은 걸로 보이는 동영상이 여러개 있었다. 이상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로 찍은 동영상이 열개나 있다니.


영상을 재생시켜보니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엄마가 장미꽃을 들고 있었다. 엄마는 행복한 얼굴로 똑같은 노래를 불렀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있지. 바람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몇 번을 다시 찍은 영상들은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을 담고 있었다.


엄마가 담긴 동영상을 한참 바라보았다. 15년전 돌아가신 엄마가 웃으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저 땐 아프지 않았을까? 영상 속 엄마는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자꾸만 보고 싶어 영상을 자꾸만 돌려 보았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엄마의 얼굴이 이런 모습이였을까. 하나도 지우지 못한 엄마의 영상을, 용량이 부족해 다른 사진을 다 지우고서라도 용량을 확보해 간직하려던 엄마의 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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