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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Feb 04. 2022

오늘의 뉘우스(feat. 떡집 며느리)

명절의 상흔

   건강상의 이유로 올 명절은 시댁도 친정도 가지 않았다.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은 것은 뒤늦게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를 제외하고 처음이다. (야호)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가 아홉 시 뉴스를 틀었다. 아나운서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명절을 위해 전을 부치다가 부탄가스가 폭발했는데 7명의 여성이 2도 화상을 입었다는 거다. 집안에 13명이 있었다던데 피해자는 오직 여자들 뿐이었다. 단전에서부터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대한민국 명절이 이래서 안 돼’ 혀를 끌끌 찼다.


   결혼 5년 차 나(며느리)의 명절 루틴은 이러하다. 달력이 빨간색을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 부부는 퇴근을 하자마자 시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떡집으로 출근을 한다. 저녁은 차 안에서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때운다. 저녁 8시가 넘어 도착했다가 혼쭐이 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이 퇴근하고 집에 오면 6시 10분이고 우리 집이 있는 통영에서 떡집이 있는 김해까지 1시간 30분이 걸린다.) 도착하자마자 떡을 포장할 상자를 접고 테이프를 붙여 쌓는다. 생산되는 판매 떡을 포장한다. 판매를 담당하는 나는 잠시 올라가 쪽잠을 자는 동안 남편은 밤을 새워 떡 생산에 투입된다. 다음 날 새벽 5시가 되면 전화벨이 울린다. ‘손님은 7시 넘어야 오는데 왜 맨날 일찍 오라시는 거야’ 눈곱만 겨우 뗀 나는 떡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혼자 투덜거린다.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거나 소멸되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14시간을 밖에서 추위와 씨름하다 보면 어느덧 저녁 7시가 넘어간다. 주문떡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와야 그날의 업무는 끝이 난다. 피곤함이 메뚜기떼처럼 몰려온다. 이미 내 몸은 쉬어 빠진 파김치처럼 폭삭 삭았다.


   저녁은 사 먹고 들어 갔으면 좋겠는데 아버님은 '밥은 편하게 집에서 먹자'고 한다. 집에서 식사를 하면 편한 것은 아버님뿐이다. 어머니와 나는 식사 준비와 뒷정리를 해야 하고 남편은 나의 눈치를 봐야 하니까. 시댁은 화장실이 하나뿐이라 여섯 명의 식구가 모두 씻어야 마지막으로 내가 씻을 수 있다. 샤워를 하는 데 까지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 번은 기다리다 지쳐 근처 목욕탕에 가서 때밀이를 받았는데 요즘 며느리들은 참 팔자가 좋다는 덕담(?)을 받았다. 3개의 방(그마저도 하나는 창고 용도로 사용 중)에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 아가씨 부부, 도련님이 모두 편안하게 잘 옵션은 없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대개 거실에서 잠을 청한다. 잠귀가 밝은 나는 시댁 식구들이 연주하는 코골이 6중주(불협화음)에 도저히 잠을 이루기 힘들다. 게다가 도련님은 친구들을 만나고 술이 취해 새벽에 들어오는 일이 많아 겨우 잠에 들었다가도 다시 깨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선잠을 자고 나면 아침 일찍 시할머니가 계시는 밀양까지 가야 한다.


   떡집 때문에 제사음식을 준비하지 못해 항상 대역 죄인이신 어머니와 나는 도착하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가 부리나케 제사상을 차린다. 다른 친지분들은 음식을 준비하셨기 때문에 일을 미룬다. 남자들도 많지만 모두 구들장에 모여 있다. 한 번은 너무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정 씨 집안 제사를 왜 정 씨 아닌 사람들만 준비하고 있냐’는 말이 튀어나온 적이 있다. 게다가 성묘는 남자끼리 가면 되지 왜 상 차리는 여자도 가야 하냐고 물었다가 가정교육 못 받은 손부가 되었다. 친지분들이 드실 밥상을 차리고 식사가 끝나면 제기 정리와 설거지는 나의 몫이다. 어르신들도 굳이 나서서 하지 않고 장손인 남편을 시킬 수는 없으니까. 이쯤 되면 신랑은 나의 눈치를 보느라 멀뚱멀뚱 서서 걸리적거리기를 시전 한다. 주방 입구에서 어물쩡거리는 당신과 싸늘한 나를 보며 어르신들이 뭐라 생각할까. 어느 한마디 똑 부러지게 하지 못하면서 도와주는 척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다. 제기 몇 개 정리했다고 아내에게 잘하는 남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성가신다.(평소에는 남편을 무척 사랑합니다. 오해하실까 봐요.) 정리가 끝나면 친정으로 바쁘게 달아날 궁리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신혼 초반 때처럼 어머님의 친정에 나를 데려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차에 올라타고 어르신들의 얼굴이 저만치 멀어질 때쯤 시댁에 대한 울분은 남편에게로 향한다. 남편은 나를 어르고 달래지만 하는 말마다 마음에 차지 않는다. 대화의 데시벨은 점점 높아져 결국 '너는 대체 누구 편이냐' 묻게 된다. 명절의 상흔은 사랑하던 남편을 ‘남의 편’으로 만든다. 평소에는 그렇게 사이좋던 우리 부부의 온도는 명절만 다가오면 차갑게 식는다. 처음에는 화도 내고 눈물도 흘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것마저 귀찮다. 작년부터는 남편에게 시댁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말해봤자 나만 나쁜 며느리가 될 뿐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눈치 없는 남편은 나의 말수가 줄어든 것은 모르고 상글벙글하다. '그래. 나만 참으면 되는 거였구나' 생각하니 맥이 풀린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4시간을 달려 친정에 도착한다. 친정 어르신들은 명절에 오지 않아도 서운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는다. 떡집에서 일하고 차례를 지내고 먼 길 오는 딸 내외가 안쓰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들다고 가지 않기 시작하면 남편이 친정에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할까 봐 꾸역꾸역 친정으로 핸들을 돌린다. 친정에 도착하면 남편은 손님 중의 손님이다. 앉자마자 상다리가 부러지게 상이 차려지고 앉아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된다. 반찬은 평소 부모님께서 드시던 음식들이 아니다. 먼 옛날 임금님도 이 정도 밥상은 안 받으셨을 것 같다. 그런데 어른들은 이번에는 송이버섯을 구하지 못했다며 차린 게 없다고 미안해하신다. 시할머니 댁에서 다른 분들 밥을 퍼드라고 남은 나물 없는 제삿밥을 먹던 나와는 계급이 다르다. 남편은 밥을 먹자마자 운전하느라 피곤했다는 이유로 방에 가서 쉰다. 운전은 2시간씩 정확히 나눠했는데 말이다.


   남편이 쉬러 들어간 동안 나는 친구들과의 단톡방으로 몸을 숨긴다. 친구들은 저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비슷한 위기를 겪고 있다.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만 골라 잔소리를 하는 시아버지 때문에 속이 뒤집어진다거나. 집안 어른들은 빼놓고 여행을 다녀왔다고 타박을 주셨다거나. 명절 내내 전을 굽느라 온몸에 기름이 절었다거나. 혹은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는 시댁도 있지만 친구의  마음이 가시방석인 것은 똑같다거나. 자신이 겪은 시집살이를 물려주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시어머니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실제로 친구 어머님들이 하나같이 이 소리를 하신다.) 며느리는 어째서 아직도! 이리도! 약자인지 모르겠다. (보고 배운 게 시집살이라 베푸는 것 또한 시집살이에서 못 벗어나는 것일지도.)


   오랜만에 찾은 납골당에서 엄마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지혜롭게 명절을 보낼 수 있냐고. 엄마는 답이 없다. 그저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을 뿐이다. 엄마 제사도 안 지내는데 시댁에서 얼굴도 모르는 어르신들의 차례를 지내고 온 내가 싫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억지로 굴러가는 명절이 싫다. 대체 누구를 위한 명절일까.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온도로 갈등 없는 명절을 보내는 방법이 있기는 할까. 요즘은 그래도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건 다 어르신들 생각인 것만 같다. 어떤 시대에 당연했던 것은 다른 시대에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침묵은 금물. 필요한 것은 계속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니까. 하지만 아직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세상이 조금 더 빠르게 변했으면 좋겠지만 나쁜 아내, 나쁜 며느리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의 모래성만 쌓다가 또 한 번의 명절이 지나간다.


아득히 먼 미래의 뉴스를 상상해본다. 명절과 관련된 소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걷히며 조금씩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웃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보인다. 나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찾아본다. 다시 안개가 가리워 보이지 않는다. 미래의 얼굴을 그리는 붓은 현재의 나의 손에 쥐어져 있을거라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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