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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Jan 21. 2022

딩크족은 아니지만

아이를 원치 않았습니다


요즘 딩크가 유행이라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아이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지긋지긋했고, 가정을 꾸리는 일에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외도와 어머니의  병으로 외조부모님 손에  영향이 컸으리라. 출생과 같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족 사람의 마음먹기로 쉽게 해체된다. 그러니 결혼과 같이 오직 선택으로 이루게 되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내게 그리 견고해 보이지 않았다. 연애를 해도 상대방을 온전히 믿기 어려웠고, 내게 결혼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옵션  하나였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비혼주의를 외치던 조숙한 어린이였으니까.


시간이 지나며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부모의 불행이 반드시 자녀에게 대물림 되는 유전자 같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결혼을  수도 있겠다'라는 사고의 확장이 일어났다. 하지만 방어기제는 작동했다. 우정과 의리에 기반한 가족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애인이 아니라 친구라면 결혼을   있다는 전제가 생겼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라 했던가.  년간 동아리에서 친하게 지내던 남자사람 결혼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애정도 있었으니 배우자가 되었다. 오해가 없었으면 한다.)


"아이는 언제 낳으려고?"

주변의 질문에는 항상 생각이 없다고 대답했다. 결혼을 했다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클래식한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사실은 아이를 온전히 감당할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가졌는데 배우자가 바람이라도 나면? 그래서 이혼이라도 하면? 혹은 내가 엄마처럼 아프기라도 해서 빨리 세상을 떠나면? 나는 항상 최악의 상상을 했다. 책임질  없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마음을 공고히 했다.


하지만 결혼을   것도 아니고 주변의 기대라는 것도 는데 하며 이내 걱정이 들기도 했다. 시댁에도 도리가 아닌  같고, 배우자에게도 미안했다. 지금이랑 다르게 나중에 나이가 들어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없을  아이를 원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100% 확신이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낳은 사람과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쫓았다. 가까운 사람의 의견을 듣기도, 책을 읽기도, 영상을 보기도 했다. <아이는 낳지 않기로 했습니다> 북토크에 찾아가 작가님에게 질문을 늘어놓기도 했다. 함께 북토크에 갔던 배우자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를 원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본인이 하는 것이 아니니 나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다. 고마웠다. 하지만 한편으론 나의 의견을 배우자에게 세뇌시키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딩크족은 아니지만 이런 게 딩크가 아니면 무엇일까 고민하는 날들이 점점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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