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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Jan 26. 2022

문제 있는 거 아닌가

결혼 5년 차, 난임 검사를 받으러 가다

결혼한 지 5년 차. 오랜 친구가 내게 썅년 같은 소릴 했다. 


"야, 니 병원 가봤나. 문제 있는 거 아니가?"


아니 아이 가질 생각이 없다는데 왜 그래. 굳이 말을 뾰족하게 깎아서 건네는 친구가 미웠다. 평소에도 심심찮게 툭툭 말을 뱉는 친구이긴 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날 따라 친구의 말이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하지 않는 것과 임신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다를 것이라고. 내가 만약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인데도 여전히 아이에 대한 생각이 없을지 궁금했고 확신이 없었다.


토요일 오전 9시 오픈 시간에 맞춰 인근에서 잘한다는 산부인과를 찾았다. 분명 우리나라 출산율이 0.84로 전 세계 꼴찌라고 들었는데. 임신을 원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놀랐다. 병원에 8시 50분에 도착했는데 내 앞에 이미 13명이나 줄을 서 있었으니까.


접수를 하고 제일 먼저 상담실로 불려 들어갔다. 지나치게 친절한 말투를 사용하시던 코디네이터분은 나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취조했다. 아무리 병원이라지만 초면인 사람에게 부부관계에 대해 소상히 아뢰어야 한다니. 나는 다소 낯이 뜨겁고 어색한데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은 항상 있는 일인 듯 평온해 보였다.


취조를 마치고 1시간을 넘게 기다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았다. 오늘은 배란주기라 질 초음파만 할 수 있다고 했다. 생리 주기에 따라 할 수 있는 난임 검사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주말에 맞춰 방문한 병원. 한꺼번에 진단을 받을 거라 생각했는데 또 와야 된다니 뭔가 퀘스트가 많아 성가신 게임을 진행하는 기분이었다.


기괴하게 생긴 의자에 누워 의사 선생님의 진찰을 받았다. 비교적 인기가 없는 젊은 선생님이셨는데 상냥한 표정과 말투에 마음이 갔다. 초음파를 통해 자궁 안을 두루 살폈다. 불편해할 때마다 선생님께서는 나와 같이 호흡을 해주셨다. 자궁은 깨끗하고 난소의 높이가 조금 다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기에 걱정할 것은 없다고 했다. 오늘은 나팔관 조영술을 하기 좋은 시기니 원하면 하는 것이 좋을 거라 했다. 알겠다고 했다. 나팔관 조영술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알겠다고 한 나는 뒤늦게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그리고 끔찍한 후기들을 보고는 못 하겠다며 줄행랑을 쳤다. 


얼마 후 시기가 되어 혈액검사를 하러 다시 산부인과에 방문했다. 간단하게 혈액 채취만 하면 되는 일인데 50분이나 차를 타고 다른 지역엘 가야 했다. 현재 거주 중인 도시에는 이런 것을 검사할 수 있는 병원이 없다니. 뉴스로만 듣던 의료시스템의 지역 불균형이 몸소 와닿았다. 얼마 전 책에서 강원도에서 100명 중 17명의 산모가 위험을 겪는다는 내용을 보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도서산간벽지에서는 아픈 것도 자유로울 수 없겠다.


혈액검사 결과는 일주일 뒤 전화로 알려 준다고 했다. 간호사는 뭐가 그리 급한지 다소 빠른 속도로 나의 검사 결과를 주르륵 읊었다. 그리고는 난소 나이가 많아 임신 확률이 20%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니 빨리 병원에 와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제 나이가 아직 젊은 데 임신 확률이 20%밖에 안된다고요?" 믿을 수 없어 되물었다. 간호사는 당황한 듯 말을 정정했다. "아, 원래 모든 사람의 자연임신 확률이 20%긴 한데요. 환자분 같은 경우에는 불임일 수도 있으니 병원에 빨리 내원하셔야 해요." 전화가 뚝 끊겼다.


불임. 20%. 환자. 이 세 단어가 머릿속을 꽉 채우니 다른 생각이 들지 않고 눈물만 흘렀다. '내가 왜?' 눈물로 번져 잘 보이지 않는 앞을 닦아 가며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다. (괜찮다는 말을 찾고 싶었던 것 같다.) 먼저, '불임'은 틀렸다. 의학용어로는 불임일지 모르나, 나는 아직 생물학적으로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도 일종의 서비스가 아닌가? 병원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불임'이 아니라 '난임'이라는 표현을 써주는 게 나았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20%'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가임기에 관계를 한다고 반드시 수정과 착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간호사는 내게 덜컥 겁을 준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환자'도 아니다. 난임은 병이 아니다. 그래서 실비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고, 공무원 휴직사유로 질병휴가를 사용하지 못한다. 하나둘씩 정리가 되고 나니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너 내 말 안 들으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와 다를 게 없는 협박이었다.


나중에 혹시 난임치료를 받게 되더라도 그 병원은 절대 다시 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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