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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Mar 17. 2024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배우자와 그의 직장 편

  어떤 책에서 주식이 쌀인 동양에서는 공동체 중심적인 생각을 한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벼농사는 씨앗을 틔운 모를 간격마다 심어줘야 수확률이 높다. 게다가 땅 덩어리가 작고 들판보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 특성상 논의 모양이 작고 굴곡져서 농기계를 사용하는 대규모 농사가 어렵다. 이러한 영향으로 마을 단위로 농사일을 돌아가며 도와주는 품앗이가 생기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회식에 불참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화도 이러한 영향이 작용한 결과라고 한다.


  육아를 하는 내게 배우자와 관련하여 가장 거슬리는 부분은 그가 소속된 직장의 회식문화다. 그가 다니는 곳은 방산업체이고, 재직자 평균연령이 50세에 가깝다. 제목을 보면 대충 떠올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맞다. 배우자의 직장 상사는 주 5일 근무에 6일을 회식하는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배우자는 회식 역시 회사 생활의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그 또한 잘 해내고 싶은 사람이다. 남편이 회식을 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날이면 나는 생각한다. "이 놈의 쌀을 백 년쯤 안 먹어야 망할 회식문화도 사라지는 것인가"


  임신 중에 배우자는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위해 여러 가지 결심을 하곤 했다. 그중 하나가 회식 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회식은 최대한 안 가려고 노력하겠지만 혹시나 모를 경우를 대비해 많이 가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열어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게 관전 포인트.) 막상 아이가 태어나자 배우자는 한 달에 두 번이니 세 번이니 하다가 결국 일주일에 한 번은 회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평소 집에서도 반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배우자를 위해 그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이는 6시 전후로 일어나서 7시 전후에 잠에 든다. 배우자는 아이가 일어나면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내가 아이의 이유식을 먹이는 동안 배우자는 전 날 씻어둔 젖병을 조립해 두고 출근한다. 오후 5시 40분경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그는 아이와 30분 정도 놀아준 뒤 씻기고 분유를 먹이고 재운다. 나는 그동안 거실에 널브러진 장난감 정리, 목욕용품 정리, 아이빨래, 아이의 다음 날 식사 준비, 부부의 저녁준비 등의 남은 일을 재빠르게 쳐낸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늦은 저녁을 먹고 빨래 널기와 설거지를 해야 한다. 이렇게 잘 맞물려 돌아가는 태엽처럼 역할 분담을 해도 육퇴는 8시 30분 전후. 만약 배우자가 회식을 하는 날이면...? 그건 상상에 맡긴다.


  아이의 생활패턴이 규칙적이게 되자 임신 전부터 하던 활동들을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 배우자의 권유와 배려로 일주일에 두 번 요가와 한 달에 두 번 독서모임을 신청했다. 출산과 육아로 망가진 몸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과 성인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며 터졌다. 배우자의 상사가 퇴근하려던 배우자를 붙잡고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그를 붙잡은 것이다.(라고 배우자가 말하네요.) 남편은 오늘 회식에 가야 할 것 같다는 문자만 남기고 연락이 되질 않았다. 하필 그날은 독서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요가는 하루 결석해도 상관없지만, 독서모임은 참석하기 위해 며칠간 책도 꼼꼼하게 읽고 준비를 했기 때문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수차례 전화연결을 시도했고 결국 그와 연락이 닿았다. 남편은 아무런 설명 없이 독서모임 시작 시간인 7시 전까지 집에 오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수화기 건너 "참 어렵게 산다."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후배들에게 아내의 갖은 잔소리도 무시하면 결국 아내가 자녀 양육을 알아서 한다며 주입식 교육을 하는 사람이다.) 일주일에 몇 안 되는 나의 시간이 존중받지 못한 게 화가 났다. 이번에 나의 시간을 지켜내지 못하면 앞으로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았다. 초강수를 두기로 했다. 배우자가 한 것처럼 나도 똑같이 통보를 했다. "6시 30분까지 집에 도착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를 이 집에서 보긴 어려울 거야."


  배우자는 직장상사와 식사를 조금 더 진행하다가 시간에 맞춰 집으로 뛰어왔다. 거실에는 싸다 만 캐리어가 열려 있었고, 나는 아이에게 인사를 한 뒤 배우자에겐 아무 말 없이 집을 나섰다. 독서모임엔 다녀왔지만 우리의 싸움은 지속되었다.


"너는 내가 사회생활도 하지 말라는 거냐"

"너는 출산과 관계없이 여전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육아휴직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있는 건 나야."

"그렇게 육아하기 싫으면 복직해. 내가 회사를 관두면 될 거 아니야"

"육아가 싫은 게 아니라 인격이 무시당한 기분이 드는 거야. 네가 회사에 욕심 있어서 육아휴직 못 쓰겠다고 해서 내가 육아하기로 합의된 거고, 나는 이미 휴직 연장원을 제출해서 기간 변경이 안돼."

"내가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짐을 싸냐. 옆에 있던 팀장님이 다 들었는데 쪽팔린다."

"네가 쪽팔린 게 내가 기분 나쁜 것보다 중요하구나."

“너는 너밖에 모르고 이제 날 싫어하는 것 같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3일간의 냉전 끝에 배우자가 먼저 사과함으로 화해가 이루어졌다. 결혼생활 7년 만에 24시간 이상 냉전이 지속된 건 처음이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과 함께 얻게 된 것은 앞으로 회식하러 가기 전에 씻기고 나가고 다녀와서는 남은 설거지를 하겠다는 그의 다짐. 그리고 눈에 띄게 줄어든 직장상사의 회식 요구였다. 나는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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