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배에 칼을 맞은 것 같아요. 너무 아파요."
"환자분, 칼 맞은거 맞잖아요? 당연히 아프죠."
"선생님은 남자라서 출산 안 해봤잖아요. 제가 얼마나 아픈지 어떻게 알아요."
"아픈 사람은 보통 말 할 힘이 없을텐데 이상하네요."
아픔, 아픔, 아픔. 제왕절개 수술 마취가 풀리고 할 줄 아는 말이 '아프다' 밖에 없는 사람이 된 나는 다양한 방법으로 당시 겪고 있던 신체적 고통에 대해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사람에게 읍소했다. 수술 3일차, 아픈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나에게 한 가지 지령이 내려졌다. '유축기로 젖을 짜는 연습을 할 것'
출산하면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아름다운 모습은 그저 환상일 뿐이였다. 내가 출산한 대학병원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이유로 아기를 낳으면 곧장 신생아실로 옮겨진 후 퇴원까지 5일 동안 단 한번의 접촉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로나 유행 시기도 한참 지났는데 자연분만의 경우에도 보호자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병원의 정책이 이해되지 않았다. 출산 후 엄마의 몸은 아기가 엄마 젖을 빠는 자극에 의해 유즙을 생성하는 프롤락틴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아기와 접촉하지 못한다니. 하지만 어쩌겠는가 따를 수 밖에.
병원에서는 아기에게 초유를 공급하기 위해 아기를 대신해 유축기라는 기계를 이용하라 했다. 유축기는 모터가 달린 동그란 본체 중간에 두개의 긴 호스가 연결되고 끝에 깔대기가 달려 있었다. 처음보는 생경한 기계를 만지작 거리며 “어렸을 적 가지고 놀던 종이컵 닮지 않았어? 왜 그 종이컵 뚫어서 중간에 털실로 연결한 거 있잖아. 여보세요? 들리나요?” 배우자에게 실없는 장난을 치며 불편한 마음을 숨겼다. 깔대기를 가슴에 붙이고 유축기 버튼을 눌렀더니 리드미컬하게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유륜을 잡아당겼다. “으악! 젖소가 된거 같잖아!”
조리원에 가서도 유축전쟁은 계속 되었다. 밤잠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세 시간에 한 번씩, 한 쪽 가슴에 15분씩 기계를 돌리고 수유실에 제출하고 두시간씩 쪽잠을 잤다. 유륜에 지속적인 자극이 있어야 젖이 돈다는데 제대로 쉬지 못하고 피곤함이 쌓이니 모유양이 점점 줄었다. 열심히 유축을 하면 피곤해서 모유가 줄고 알람을 끄고 푹 쉬어버리면 자극이 적어 모유가 줄었다. 수유실에 적은 양의 모유를 제출할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분명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양이 적은거지. 조리원에 같이 있는 어떤 사람은 한시간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을 만큼 옷이 젖는다는데 나는 왜 불편함을 못 느끼지. 자책과 비교로 얼룩진 마음은 나를 점점 더 쪼그라들게 했다.
조리원을 퇴소하고 집에 와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산후도우미와 함께하는 시간은 참혹했다. 젖양을 늘리기 위해 아기에게 직접 젖을 물려야 하지만 젖병에 비해 엄마의 가슴을 빠는 일이 50배는 힘들다고 했다. 아기가 지치기 전에 곧바로 이어서 분유 보충을 해야했다. 그는 매끼니 마다 “엄마가 젖이 모자라서 쫄쫄 굶었네”라는 말을 했다. 출근시 첫 인사가 "젖이 또 얼마 안나왔제?" 였고, 유축을 하고 있으면 아무렇게나 불쑥 손을 내밀어 모유가 더 잘 나오도록 가슴을 주물럭거렸다.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짐승이 된 것 같았다. 끊임없는 젖스라이팅(?)으로 주말에는 그나마 30ml라도 나오던 유축량이 산후도우미가 있는 평일 낮 시간에는 10ml로 줄어버렸다. 산후도우미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고 스트레스가 극심해진 나는 결국 업체에 전화를 걸어 새로운 분으로 교체를 요청했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3주간의 산후도우미 이용기간이 끝나기까지 모유의 양은 늘지 않았다. 대한모유수유의사회 회원인 소아과 의사를 수소문해 찾아갔고 여러번 상담을 거쳤다. 모유수유를 원활하게 한다는 가슴마사지도 수차례 받고 유축기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리는 고가의 기계도 대여했다. 밤낮없는 노력이 무색하게도 나의 가슴은 아기가 먹을 양을 충분해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기가 120ml를 먹으면 나는 겨우 20~30ml를 준비할 뿐이었다. 아쉽지만 유축수유와 분유수유를 병행하기로 했다.
하루에 6~8번, 3~4시간 간격으로 계속 유축을 하고 분유보충을 하는 일을 지속했다. 남들은 그렇게 안 빠진다던 출산 후 체중이 임신 전보다 훨씬 줄었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모두 나의 건강상태를 염려했다. 체력이 떨어지니 쉽게 지쳤고, 쉽게 분노했고, 쉽게 우울했다. 뒤늦게 방문한 건강검진에서는 영양실조와 탈수 내용이 담긴 결과서를 받았다. 아이를 돌보기 커녕 내 몸 하나도 건사하지 못하던 8개월의 노력 끝에 모유수유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다.
꼭 모유가 아니어도 분유를 먹고 자라는 아이들도 잘 자라는데, 왜 그토록 모유수유에 집착을 했던가. 어떤 두려움이 모유수유에 대한 강력한 욕망을 불러 일으켰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동안 무엇이는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임신도, 모유수유도 어려운 몸임에도 그것을 쉽게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도 마음도 혹사시켰다. 내게 임신과 출산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였고,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닫는다. 앞으로 육아에선 또 얼마나 무너지고 부서지며 배우는 것들이 많을까. 조금은 열린 마음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