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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근 May 18. 2022

열무김치가 맛있으면 성공일 줄 알았는데

동결 1차 난임일기

"딸 괜찮으면 아빠가 내일 갈까? 김치도 담아놨고 해서"


  이번 어버이날엔 아빠가 집에 오시기로 했다. (시댁이나 할머니댁에 가느라 친정엔 늘 안 갔지만) 이번에도 내가 못 간다고 해서 직접 오신다는데도 짜증을 있는대로 냈다. 마침 아랫배도 싸르르 싸르르 아프고 식은땀이 줄줄 흐르던 참이었다. 남편은 장인어른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나를 달랬다. 멀리 살아서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 당신이 얼마 전 시험관 시술한게 잘 못돼서 복강경 수술까지 했는데 딸 마음 아플까봐 전화도 못하고 직접 보고 싶어서 오는거 아니겠냐고. 게다가 회복하고 있을거라 생각하실텐데 시험관을 또 했다고 하니 얼마나 걱정이 되겠냐고. 나는 남편 보다 목소리를 높였다. 아 몰라. 몸이 안 좋은 걸 어떡하라고. 요즘 나의 시술 과정과 건강상태는 가까운 이들에게 무기다. 속수무책으로 입을 다무는 상대방과 달리 나는 일방적인 폭력의 가해자가 된 걸 알면서도 애써 눈을 감았다.


  11시쯤 도착하기로 했던 아빠는 9시도 안 돼서 도착을 했다. 그 덕분에 나는 누워서 아빠를 맞이 해야했다. 오전 오후 9시 전후는 프로게스테론 400mg를 몸 속 깊이 넣고 약물이 흐르지 않고 잘 흡수되도록 30분 간 누워있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안방 침대에 누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딸을 본 아빠는 애써 눈을 피하고 거실로 나갔다. 남편이 눈동자를 굴리며 소리내지 않고 입으로 단어들을 만들어 낸다. 뭐라는거야. 거기 서 있지말고 밖에 이불이나 좀 펴줘.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거실에 누워있는걸로 대신했다. 3시간 가까이 운전해 마산까지 오신 아빠는 집에 도착한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문경집으로 가셨다. 주차장에서 분명 웃으며 손을 흔들었는데 돌아서는 마음이 무거운건 왜 였을까. 아빠를 배웅하고 집에 돌아오니 새엄마가 보내주신 열무김치가 눈에 들어왔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맛있게 익겠지? 그때쯤이면 아기집도 보고 다이아반지(아기의 영양물질이 되는 반지모양의 난황에 작게 붙어 있는 아기를 보고 다이아반지라고 부른다.)도 볼 수 있겠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냉장고 문을 닫았다. 


  임신 4주차에 진행하는 1차, 2차 혈액검사를 무사히 통과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임신 5주차에 확인하는 아기집도 봤다. 착상된 위치도 자궁의 정중앙에 자궁내막의 두께도 좋고, 아기집의 모양도 동그랗게 예뻤다. 지난주에 진행한 호르몬 검사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다만, 아기집 왼쪽과 아래에 피고임이 있어 조심을 해야했다. 피고임이 자연스럽게 흡수되면 좋지만, 출혈이 되어버리면 언제 아기집을 씻어 내 버릴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주일 간 아무것도 하지 말고 누워만 있으란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누워있는 일주일 내내 피고임에 대한 걱정보다 진료실 문을 닫을 때 들었던 목소리가, "다음주엔 아기가 보여야합니다"라는 문장이 더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일주일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지난주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배가 고프면 속이 울렁거리고 밥을 먹으면 체한 느낌이 나는게 입덧을 하는 것 같았다. 울렁증이 심한 날에는 특정 음식의 냄새가 맡기 싫었다. 차갑고 상큼한거 없나 냉장고를 뒤지다 열무김치가 생각났다. 때마침 열무김치가 잘 익은 냄새가 났다. 열무김치와 함께 밥을 꼭꼭 씹었다. 열무김치가 맛있는 걸 보니 이번엔 임신이 맞구나. 드디어 성공했구나. 입덧을 8개월이나 했던 엄마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게 찐쌀과 열무김치라고 했으니 나도 그럴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머릿속으로 예정일인 1월 초에 맞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계획을 세우고, 난임병원 졸업 후 옮겨갈 출산병원과 산후조리원을 검색했다. 모든게 다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병원엔 진료시간 보다 10분 빨리 도착했다. 결과를 듣고 앞으로 더 심해질지도 모를 입덧을 위한 약도 처방받을 계획이었다. 꽃무늬 치마를 갈아입고 사마귀를 닮은 침대에 누웠다. 선생님께서 화면을 내 쪽으로 돌려주셨는데 검은 화면을 보자마자 심장이 쿵 내려 앉았다. 한마디 설명없이도 알 수 있었다. 다이아반지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말 없이 초음파 기계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렸다. 아기집 오른쪽 아래에 난황일지도 모르는 아주 작은 점만 보였다. 선생님은 또렷한 링이 보여할 시기인데 보이지 않는다며 자리를 옮겨 자세히 설명을 해주신다고 하셨다. 선생님이 종이와 볼펜을 꺼냈다. 선생님이 내 앞에 종이를 꺼내는 건 항상 어렵고 불편한 설명을 하기 위함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은 종이 위에 유산이라는 글자를 쓰고 그 옆에 괄호와 고사난자라는 단어를 적었다. "하나영님은 지금 고사난자가 의심되는 상태에요. 고사난자는 아기집은 있는데 아기가 자라지 않는 것을 의미해요. 하나영님처럼 아기집이 1.93cm면 난황이 선명하게 있고 아기가 0.3cm 정도는 자라 있어야해요. 지금 아기집에 비해 아기의 주수가 일주일 정도 느리다고 봐야해요.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임신 후반기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초기에는 매우 중요해요. 특히나 우리는 시험관을 하고 있으니까 모든 단계가 정상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했었잖아요. 그래도 드물게 아기가 늦게 생기는 경우가 있기도 해요. 예후가 좋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간혹 정상임신처럼 유지되기도 하니까요. 일주일만 더 지켜보고 진단을 확정해야할 것 같아요." 


  진료실을 나왔는데 지난번과는 달리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고사난자가 의심된다면서 다음주 병원에 오기 전까지 먹어야 할 약 처방은 더 많아지고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비급여 콩주사도 맞고 가라고 했다. 주사를 맞으면서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억울한 마음(먹기 싫은 아침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는데. 식재료도 유기농 무항생제 찾아 먹었는데. 전자파 걱정되서 전자레인지 옆에 가지도 않았는데. 좋아하던 테니스도 서핑도 관뒀는데.)과 죄책감(임신확인하면 난임휴직 산전휴직으로 바꿔야해서 급여가 많이 줄어 들겠네. 괜한 일에 쉽게 짜증을 내서 그런가. 피고임 때문에 운동을 못한 내 탓인가. 핸드폰을 너무 많이 봐서 방사선에 노출되었나.)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바깥으로 향하는 분노(갑자기 결혼 한다고 알지도 못하면서 속도위반했다고 입을 놀리던 니년들 때문이야. 아빠는 왜 내 자궁외임신이 사돈에게 죄송한건지 어이없네. 방탕하게 살아도 임신만 잘 되던데. 이번엔 잘 됐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한 번인데 대답하는 사람은 도대체 몇 번이냐.)도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 평소에 하지 않던 생각을 하는 내가 낯설었다. 고사난자 진단이 확정되면 받아야 할 소파술에 대한 공포도 엄습했다. 진공청소기가 몸속에 들어가 켜지는 상상을 하니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 아침밥을 먹으며 열무김치가 맛있으니 성공인줄 알았던, 기분 좋은 상상은 이미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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