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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식이 Jun 20. 2017

코젤 다크

대패새우 삼겹말이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봄날의 밤.


오늘 시계는 오후 네시에 멈춰 있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 시간이 가까워진 양 집에 빨리 가고 싶은 생각과, 업무 마감을 앞둔 양 몰려드는 긴급요청 메일과, 커피 넉 잔을 이기고 꾸준히 머물러있는 졸음과, 가까이 내려와 앉은 구름과, 하루 종일 내리는 봄비.


쉴틈 없이 몸을 떨어댄 전화기는 방해금지 모드로 놓고, 오랜만에 보는 거울 속 민낯을 마주하고, 머리는 아무렇게나 질끈 동여맵니다. 오롯한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파에 앉아 맥주 한 캔을 마시는 시간 동안, 시계는 자정에 멈춰 있습니다. 오늘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 잠깐의 시간. 치열했던 하루 끝에 얻은 위안의 시간.


오늘은 흑맥주입니다.


황금빛 젊음과 흩어지는 가벼움을 과시하는 라거는 제쳐두고, 냉장고 한편에 점잖게 앉아있는 코젤 다크를 꺼냈습니다. 흑맥주의 묵직한 외향과는 다르게 입술에 닿는 순간부터 목 넘김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이 맥주 한 캔이 건네는 위로가 꾀나 힘이 됩니다. 진한 다크 초콜릿처럼 날카로운 쓴 맛 뒤에 달콤한 여운을 남기는 코젤 다크를 음미하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다크 초콜릿은 쓴맛인가요, 단맛인가요? 쓰고 달다는 건 어떤 맛인가요. 쓰다가 달다는 걸까요, 쓰다 달다 쓰다 달다 한다는 걸까요, 쓰고 단 맛이 동시에 느껴진다는 걸까요.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봄날. 오늘과 내일 사이.

쓰고 단 하루가 마무리되었거나, 시작된 거겠지요.


2017년 4월 17일, 또는 18일.

midnight beer.


http://bit.ly/2sutQ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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