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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균 May 03. 2016

우리는 왜 크리스토퍼 놀란에 열광하는가

그의 손엔 언제나 조커 한 장이 놓여 있다

b.

 2014년 크리스마스에 국내 관객 천만을 넘어선 또 하나의 영화가 등장했다. 2014년에만 무려 네 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한 것인데, 그 마지막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가 장식했다. 개봉 전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인터스텔라>는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허니버터칩과 함께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던 IMAX 상영이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영화관에서 상영이 지속됐다.

 사실 기존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인터스텔라>는 개봉 이후보다 개봉 이전에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개봉 전부터 각종 SNS에선 그의 영화에 관한 가십거리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이 그의 영화 제작 방식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영화 속 장면을 위해 실제로 만들었던 모래 폭풍이나 옥수수 밭부터, 우주에서의 블랙홀을 표현해내기 위해 연구했던 자료들에 대한 논문 발표 등은 그의 영화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인터스텔라>에 대한 관심은 영화를 만든 감독에게로 이어졌고, 당연히 크리스토퍼 놀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사실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것에서 벗어나 영화 제작 방식에 관심을 갖고, 영화를 만든 연출자의 제작 의도나 철학 등을 관심거리로 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1.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건 2008년 영화 <다크 나이트>의 개봉 이후로 짐작해볼 수 있다. 영화 마니아들은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감독을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 <메멘토>부터 눈여겨봐왔지만, 사실 이전에 개봉한 <배트맨 비긴즈>나 <프레스티지>에서 알 수 있듯, 대중들은 <다크 나이트>의 개봉 이전만 해도 그의 영화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다크 나이트> 개봉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감독 중 한 명이 되었다. 마니아를 넘어 대중들에게도 인지도가 알려진 데에는 슈퍼 히어로물의 판도를 뒤집어버린 <다크 나이트>의 작품성도 한몫을 차지했지만, 사실 그 뒤에는 우연과 의도가 교묘하게 배치된 ‘무언가’가 있었다.

 <다크 나이트>가 개봉하기 전, 히스 레저는 자택에서 약물 과다 복용으로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 우울증과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가 잠을 이루기 위해 선택한 약물 오용이 사망의 주된 원인으로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그의 사인보다 그가 우울증과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 와중에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의 촬영본이 편집 없이 개봉됐고, 광기 어린 핏빛 미소와 함께 인간성을 배제한 듯 살색을 최대한 감추려는 조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자연스레 조커라는 캐릭터와 연관 지었다.

 배역이 배우를 집어삼킨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한 배우를 죽음으로 몰고 가게 한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가장 잘 살려준 감독의 영화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영화관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결과, 국내에서도 전편의 4배가 넘는 관객이 <다크 나이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히스 레저라는 배우의 죽음이 가져온 사람들의 관심과 입소문의 놀라운 파급력 탓인지 <다크 나이트>는 개봉 전부터 바이럴 마케팅을 홍보에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비록 국내에서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해외에서는 영화를 현실로 가져온 페이크 웹사이트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어져 온 이벤트 등이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했고, 이는 곧 역대 최다 사전 예매율과 오프닝 기록으로 이어졌다.


2.

 <다크 나이트 라이즈>까지 크리스토퍼 놀란은 자신의 연출작이 개봉될 때마다 바이럴 마케팅을 영화 개봉 전부터 홍보에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비록 <다크 나이트> 만큼의 파급력을 가져오진 못했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연출’이 하나의 홍보수단이 되어 그 이상의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이미 그의 영화에 충분한 기대와 만족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고, 개봉 전 굳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이름이 극장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그의 영화를 보러 갔다.

 하지만 그 이면엔 어디까지나 <다크 나이트>가 있었다. <인셉션>은 <다크 나이트> 3부작의 완결에 기대감을 심어준 영화였고,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 기대감에 부응한 영화였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 그의 영화엔 <다크 나이트>를 넘어설 특별한 ‘무언가’가 또 필요했다.

 이번엔 SNS가 그 자리에 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추구하던 연출 의도는 SNS를 만나 우연의 일치처럼 엄청난 파급효과를 창출해냈다. 사람들은 <인터스텔라>의 촬영을 위해 크리스토퍼 놀란이 행했던 일련의 행동들을 SNS로 공유하기 바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영화는 별다른 홍보 없이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그가 촬영을 위해 만들어낸 실제 옥수수 밭과 모래폭풍은 사진과 함께 퍼져나갔고, 웜홀과 블랙홀을 표현해내기 위해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과 회의를 나누는 장면은 영상으로 공유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터스텔라>는 영화의 서사적인 측면보다 사실성을 더 강조하는 측면으로 홍보가 진행됐다. TV를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에서도 물리학과 천문학을 넘어 철학적으로 <인터스텔라>에 접근하는 시도들을 보였고, 뛰어난 과학적 고증으로 SF의 걸작으로 추앙받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무의식적 오마주를 얻었다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언급에 힘입어 영화의 사실성에 중점을 두고 영화의 홍보를 지속해 나갔다.

 이러한 홍보 덕분인지 사람들은 영화의 줄거리보다 영화 속 우주에 더 관심을 가졌다. 그저 영화에서 우주를 얼마나 극적으로 표현해냈을지를 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우주를 가장 사실적으로 보기 위해 너도나도 IMAX 영화관을 찾았다. IMAX 상영관에서 보여주는 <인터스텔라>는 IMAX 상영이 종료될 때까지 매진 행렬을 이어갔고, 아쉽게 IMAX 티켓을 구하지 못한 관객들은 일반 상영관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인터스텔라>는 국내에서 외화로는 3번째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됐다.

 개봉 전 영화의 화제성이 무조건 흥행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화제가 된 만큼 관객들의 기대를 만족시킬 작품성을 지니고 있어야 극장에서 나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언제나 관객들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작품성 그 이상을 보여줬고, 이에 관객들은 천만이라는 숫자로 보답했다. 이제 관객들은 그의 영화에 더 큰 기대를 가질 것이고, 차기작은 개봉 전 <인터스텔라>보다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를 기다리는 관객들을 배신한 적이 없으니 관객들은 또다시 열광할 것이고, 크리스토퍼 놀란은 또 이에 보답할 것이다.


3.

 2010년 여름, 우리나라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영화가 두 편 있었다. 한 편은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였고, 다른 하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이었다. <아저씨>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동석자와 원빈이라는 배우에 대해 얘기하기 바빴고, <인셉션>을 보고 나온 관객들은 팽이에 관해 얘기하기 바빴다. 원빈의 외모에 대해선 동석자와 같은 반응을 보였지만, 팽이에 대해선 서로의 의견이 엇갈렸다.

 같은 의견에 대해서는 대화의 여지가 남지 않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게 되면 그 대화는 지속된다. 더욱이 정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을 땐 그 대화 역시 끝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인셉션>을 보고 나온 관객들에게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주제는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팽이가 계속 돌고 있었는지, 멈춰버렸는지에 대해서만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눈다. 감독이 아닌 이상 그 토론에 결론은 나지 않을 터, 결국 그들은 인터넷을 통해 그 영화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찾아보게 되고, 타인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비교해본다. 여기서 우리는 관객들이 크리스토퍼 놀란에 열광하는 또 하나의 이유를 알 수 있다. 그의 영화는 우리에게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영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항상 우리의 입을 근질거리게 만드는 내용들이 영화관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개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 밖을 나서며 영화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주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내용이 어렵거나, 결말이 명확하지 않거나. 크리스토퍼 놀란은 항상 그의 영화에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 이유는 꼭 집어넣는다. 그의 영화 속엔 관객들의 머릿속을 자극하는 철학적인 질문들이 영화 전반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의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내용들은 한 번 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번 보면 뭔 내용인지 모르겠으나 몇 번 보다 보면 어느 정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온다는 <메멘토>나 반전마저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프레스티지>에 대한 관객들의 영화 평을 보면 그가 얼마나 관객들에게 어렵게 다가갔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끊임없이 이 영화에 대해 찾아보고, 다른 사람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끔 만든다.

 사실 관객들은 어려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개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즐기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를 볼 때면 으레 생각하려 하고, 고민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자연스레 다른 사람과의 대화로 이어진다.

 영화에 대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의 재미가 있고, 없고에 대한 단순한 주제를 넘어서서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고민해보게끔 만드는 것은 영화감독들의 가장 큰 숙제일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러한 숙제를 가장 잘 풀어내는 감독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영화 속에 담고자 하는 심오한 내용들을 관객들을 위해 쉽게 풀어쓰고, 그만큼 적당히 드러낸다. 관객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기본적인 요소들을 전반에 깔고 그 위에 생각을 덧씌운다. 그의 생각은 꿈을 통해 전달될 수고 있고, 슈퍼 히어로를 통해 전달될 수도 있다. 때로는 기억으로, 때로는 지구를 넘어 우주에서 전달되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요소 속에 현실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내던질 때, 사람들은 생각한다. 관찰 뒤 통찰하고, 관심 후 의심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사람들은 그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만큼 애정을 쏟는다. 정신없이 살아가던 우리가 생각하게끔 만들어주고, 그로 인해 우리는 존재의 가치를 되찾는 것이다. 때로는 그것이 SNS 상의 허세로 표현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대화의 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는 그의 영화를 통해 생각하고, 그의 영화는 그렇게 영화관 밖에서도 존재하게 된다.


4.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이전 작품보다 더 많은 국내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다. 그의 작품은 개봉할 때마다 자신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대중의 그를 향한 사랑은 <인터스텔라>에서 절정에 달해 마의 천만 고지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해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국내만큼의 선풍적 인기를 이끌지 못했다. 각종 시상식에서도 <인터스텔라>는 외면받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그의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차기작에 대한 정보가 하나 둘 공개될 때마다 대중은 기대하고 그만큼 기다린다. 그리고 그의 영화를 보고 나와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할 것이다.

 그동안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메멘토> ★★★☆

<배트맨 비긴즈> ★★★★

<프레스티지> ★★★

<다크 나이트> ★★★★★

<인셉션> ★★★★★

<다크 나이트 라이즈> ★★★★☆

<인터스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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