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의 여름, 설악산 계곡
드디어 도착한 것일까?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도로를 달리다, 중간에 눈을 뜨면 아직도 도로 위였다. 가끔씩 설악산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보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소곤소곤 이야기를 했지만 선잠에 빠진 나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옆에선 동생이 곰인형을 베고 자고 있었다. 길이 울퉁불퉁해지면서 차가 이리저리 요동쳤고 동생도 잠에서 깨었다. 어머니는 백담사 계곡이라고 했다. 차 문을 열자 풀벌레 우는 소리가 요란했다. 우리가 졸린 눈을 비비는 새, 아버지와 어머니는 텐트를 쳤다. 이불이 깔리자마자 우리는 잠이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텐트를 차에 싣고 맘에 드는 곳에 내키는 대로 가는 여행을 좋아했다. 휴가 시즌이 끝나고 8월 15일이 지나 저녁 바람이 조금 차다 느껴질 때면, 우리 가족은 뒤늦은 휴가를 떠났다. 서울에서 밤중에 출발해 설악산을 거쳐 동해안 북단의 해수욕장을 하나씩 들르며 속초 또는 경포에서 여행이 마무리되곤 했다. 맘에 드는 곳에 텐트를 치고 하루 이틀 묵은 다음, 또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식이었다. 새벽에 항구에서 그날 잡은 해산물을 사다가 맘에 드는 장소에 코펠과 버너를 펼치고 밥을 해 먹었다. 물론 지금은 취사 가능한 곳이 정해져 있어 그런 방식의 여행은 힘들겠지만.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니, 텐트가 이슬에 젖어 촉촉했다. 자갈밭에 텐트를 친 터라 몸이 살짝 배겼고 아무리 여름이라지만 계곡이라서 추웠다. 텐트 지퍼를 내리니 눈앞에 계곡이 펼쳐졌다. 하얗고 커다란 바위가 여기저기 서 있는 새, 깊이를 알 수 없는 검푸른 계곡물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사람 붐비는 곳을 싫어해서 역시나 계곡에는 우리 가족 뿐이었다. “빨리 밥먹고 수영하자!” 나와 동생은 깔깔거리며 수영복을 갈아입었다.
이미 한바탕 수영을 마친 아버지는 유리로 된 어항을 씻고 있었다. 입구 부분에 떡밥을 바르면, 한번 그리로 들어온 물고기가 나갈 수 없게 만들어진 어항이었고 위치를 알 수 있게 부표가 달려있었다. 아버지는 푸르딩딩 깊은 계곡 안에 어항을 넣었다.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맑아서, 우리도 어항 주변에서 망설이는 물고기 떼를 볼 수 있었다. “물고기가 도망가니, 수영은 저쪽 얕은 데서 하자.” 아버지의 말에 우리는 얕은 곳에서 놀았다. 어머니는 챙이 넓은, 만화 영화에서 공주님이 쓸 법한 리본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계곡물은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차가왔다. 동생과 나는 입술이 퍼렇게 될 때까지 물에 있었다.
이윽고 점심 때가 가까워졌고, 아버지는 어항을 꺼냈다. 하지만 물고기는 고작 몇 마리 뿐이었다. 보통 어항에 물고기가 많이 들어가는 건 해가 진 다음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고기를 손질해서 고추장과 수제비를 넣고 매운탕을 끓였다. 보글보글거리는 소리가 어쩐지 편안했다. 민물고기보다 수제비가 더 많이 들어있는 뜨끈하고 얼큰한 매운탕을 다같이 플라스틱 코펠 접시에 떠서 먹었다. 우리 입술도 다시 발그레해졌다.
나와 동생은 다시 튜브를 들고 계곡으로 나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비가 올 때를 대비하는지, 텐트 위에 비닐 가리개를 치기 시작했다. 동생은 얕은 곳에 떠다니는 송사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튜브 위에 몸을 맡기고 둥둥둥 떠다니면서 머리 위 하늘의 예쁜 색깔과 눈 앞의 바위 위에 드리워진 섬세한 나무 그늘,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맑고 차가운 물이 손가락에 부딫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머리 속을 백지처럼 텅 비우고 물 위에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는 새, 언젠가 배웠던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혼자만의 생각, 그리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집중했던 제일 처음의 기억은 바로 그때였다. 여덟 살, 초등학생 시절의 어느 여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