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요일 오후마다 그 헌책방에 들렀다.
'새마을책방'은 헌책방이 있을만하다 싶은 그런 구석진 도로변에 있었다. 번잡한 시장에서 좀 떨어져 있지만 장을 보고 설렁설렁 걷다 우연히 마주칠 만한 곳 말이다. 웃는 인상의 아저씨와 깐깐한 아주머니가 운영하던 그 헌책방은 늘 한가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책들이 꽂혀있는 것도 모자라서 책꽂이 앞에도, 출입문 곁에도, 계산대에도 책들이 몇 겹씩 총총총 쌓여 있었다. 헌책방에 들어서면 길게 떨어지는 오후 햇살에 책방 안을 떠도는 먼지가 반짝반짝 빛났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토요일 오후마다 어김없이 그 헌책방에 들렀다. 입시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은 그렇게 절박하지 않은, 그래서 뭔가 안 해보던 것을 해보고 싶은 열여섯 살짜리에게 헌책방은 적당한 곳이었다. 오후 5시에 수업이 끝나면 곧이어 밤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시절, 해가 떠 있을 때 집에 갈 수 있는 건 토요일 단 하루뿐이었다.
애초에는 참고서를 싸게 사고 싶어서 헌책방을 찾곤 했다. 한 달에 십여 권씩 참고서를 살 때마다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헌책방을 뒤져 윗 학년 선배들이 내다 판 참고서를 사는 거였다. 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고2 여학생이 헌책방에 포진한 온갖 책 더미를 뒤지다가 결국은 문고판 소설의 맛을 알게 되고, 뒤이어 로맨스 소설을 탐독하게 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새마을책방의 계산대 바로 아래, 세 칸 밖에 안 되는 작은 책장에는 로맨스 소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이미 누군가가 읽고 또 다른 누군가도 읽어 덧 표지는 없어진 지 오래, 책등의 모서리도 부드럽게 낡아 버린 로맨스 소설들이 거기에 있었다. 1980년대, 심지어 1970년대 출판된 오래 묵은 책에서는 종이가 삭는 구수한 냄새가 났다. 한 권에 300원씩, 다섯 권을 사는 것이 내 습관이었다. 다 읽은 책은 그다음 토요일에 다시 새마을책방에 가서 200원씩 받고 팔곤 했다. 작은 책장에 끊임없이 새로운 로맨스 소설들이 들어오는 한편, 내가 봤던 책이 몇 달이 지나 다시 나타나곤 하는 걸 보면 분명 그 주변에는 로맨스 소설 마니아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우리는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새마을책방의 그 책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검은 비닐봉지에 로맨스 소설을 담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새우깡이니 카라멜콘이니 하는 봉지 과자를 사서 돌아오면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후 내내 따뜻한 햇빛을 등 뒤에 느끼면서 거실 카펫 위에서 뒹굴거리며 로맨스 소설을 읽고 또 읽었다. 손가락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쪽쪽 빨아가면서. 그러다 보면 죄책감이 살짝 들면서 이제 공부를 좀 해볼까, 란 생각이 샘솟아 자연스레 다시 책상 앞에 앉곤 했다. 당시에 조아라나 문피아 같은 장르소설 플랫폼이 있었다면 아마 내 진로는 로맨스 소설 작가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헌책방을 드나들던 습관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나이를 먹어 좀 더 행동반경이 넓어진 탓에 동대문 시장 근처 헌책방들을 뒤졌다. 그러다 외국 잡지를 사 모으는 것으로 이어졌다. 신기한 잉크 냄새가 나던 잡지들. 손으로 쓸어보면 우리나라 책에선 볼 수 없던 매끄럽고 얇디얇은 종이의 질감이 느껴졌고, 나는 그렇게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결정지은 건 대학교 때의 전공이나 첫 번째로 합격한 회사가 아니라, 새마을시장 한 켠에 있던 새마을책방이 아니었을까. 계산대 아래 세 칸짜리 책꽂이를 가득 채우던 로맨스 소설이 없었다면, 그래서 헌책방에 매료되지 않았다면 좀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했다는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을 읽고 쓰고, 손에 잡히는 어떤 형태로 가공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나의 모습도 괜찮아 보인다. 열여섯 살 때부터 좋아하던 일을 여전히 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