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좋은 재료를 두고 ‘간’을 맞추는 일의 중요성

by 이혜

Contents log <왕과 사는 남자>

26.2.7 (개봉 1주차, 롯데시네마 월드타워, 14:05)


1. 성기게 배치된 관계의 아쉬움

단종과 엄흥도의 관계성이 너무 성급하고 성기다. 60분 중간점을 기준으로 후반부가 견디기 힘들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전반부를 후반부를 위해 촘촘하게 쌓지 못하고 배우들의 개인기에 가까운 연기에 기대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인물 간의 교류, 관계성이 쌓였다면 더 아름답고, 더 슬플 수 있었을 텐데. 조금 더 들어가자면 단종과 엄흥도라는 두 인물이 쌓아가는 관계성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비극적인 인물에서 오는 안타까움 외에는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가난한 산골 무지랭이 촌장 엄흥도에게 ‘단종’은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는 공백이다. 그 반대의 관계성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니 무색무취하고, 간이 덜된 느낌이다.


2. 소재와 배우의 연기력으로 다 채울 수 없는 빈틈

배우의 개인기, 배우의 마스크에만 기대어 가기엔 다른 요소들의 빈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웰컴투동막골>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꽤 오래전 영화라 기억이 휘발되어 있긴 하나 강력한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수류탄이 옥수수 창고에서 터져 팝콘이 눈처럼 떨어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모든 요소들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에 남는 단 하나의 장면인데 아쉽게도 이 작품에는 바로 그 한 장면이 부재하다.


3. 명절에 보기 좋은 약속된 웃음과 눈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확실한 웃음, 눈물 포인트는 대중적인 미덕이 있다. 극장에서 다양한 연령층, 특히 어르신들이 많이 보였던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곱게 차려 입으신 할머님들이 함께 웃고 눈물을 훔치게 하는,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함께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영화란 또 얼마나 위대한가.


ETC 소재는 한 번 소비되면 다시 다루기가 무척 어렵다. 기왕 소재를 선점하여 쓰는 쪽이 있다면 최고로 잘 다루어주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그런 책임감을 갖고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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