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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Feb 06. 2024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

2024 온유 매일 필사 세 번째 

그런데 다음 순간 갑자기 다른 사람도 아닌 시몽이 들어오는 바람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시몽은 그녀를 보고 못이 박힌 듯 그 자리에 멈춰 서서는 기쁨을 감추기 위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그 모습에 그녀는 마음이 움직였다.
폴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은 것은 두 번째 구절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구절이 그녀를 미소 짓게 했다. 그것은 열일곱 살 무렵 남자아이들에게서 받곤 했던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자아를 잃어버린 폴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물은 시몽. 시몽의 그 질문이 유치할지라도 폴에게 자신을 일깨우는 질문이 되었다. 시몽의 질문을 떠올리며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던 폴의 모습이 햇빛에 얼마나 눈부셨을지 상상되었다.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한다고 여기고 싶은 것에, 껍데기에 갇혀 살고 있던 폴을 성찰하게끔 만든 건 짧은 질문이었지만 애정이었다. 스스로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자고 다짐이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사실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랬다. 그는 정직했다. 하지만 이렇게 뒤얽힌 삶 속에서 그런 정직성만으로는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는 게 아닐까 하고 그녀는 자문했다. 필요할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포기한다 해도 말이다. 
길을 건넌 그녀가 출발하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것을 그는 움직이지 않은 채 바라보았다.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게 폴이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사랑이 자신 안에서 폴을 부르고, 폴을 만나고, 폴에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겁에 질린 채 고통스럽고 공허한 마음으로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드디어 폴이 로제의 거짓과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느끼는 것 같아서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소설이기에 가능한 것 같지만 상처받을 폴에게 시몽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앞으로 폴이 어떻게 로제를 떠나 시몽에게로 갈지 모르지만 시몽이 힘들지 않게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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