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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ating Kabin Feb 24. 2024

Liquid Love-Zigmunt Bauman

#3 - 1 

일주일 만에 역행자를 후딱 읽고 나니 이 기세를 몰아 독서를 계속해야겠다는 열정이 불타올랐다. 퇴근한 남편에게 무슨 책을 읽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하니 콧방귀와 함께 집에 있는 안 읽은 책부터 읽으라는 핀잔을 들어버렸다! 


나에게는 희한한 버릇이 있다. 책을 읽지 않아도 일단 수집한다. 그래서 책을 읽을 생각이 100% 있는 게 아니어도 뭔가 똑똑해 보이는 상대가 책을 읽고 있으면 그 사람이 지인이던 아니던 그 책 좀 추천해 달라고 대뜸 물어본다. 


Liquid Love는 그렇게 알게 된 책이었다. 홍콩에서 호텔리어로 일하던 어느 날, 우리 클럽 라운지에 간간히 계약서 인쇄를 맡기러 오는 무뚝뚝한 싱가포르계 금융회사 CEO가 인쇄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구면인데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그 책은 무슨 책이냐고 물어본 것이 계기가 되어 구매하게 되었다. 대중적인 책이 아니어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여 하버시티에 있는 eslite에서 아주 간신히 구입하게 되었는데, 주로 소설만 읽던 내가 갑자기 심오한 철학 책을 읽으려니, 부끄럽지만 지식과 지능의 차이를 극복하질 못하고 7페이지짜리 서문도 채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엔 어쨌거나 한 페이지라도 읽어 보려는 마음으로 데이트 다니는 이곳저곳에 참 많이 이 책을 데리고 다녔지만(책이 펫도 아닌데;;) 결국 한 페이지도 읽어 보지를 못했다. 남편이 그 책이나 읽으라고 핀잔을 준 어제는 그렇게 이 책을 책장에 처박아 둔 지 일 년 반 남짓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

https://www.kyobobook.co.kr/service/profile/information?chrcCode=2001249001

(저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니 다시 한번 책장에 처박아 둔 게 미안해진다... 썸네일을 보고 있으면 날 보며 '너 왜 내 책 안 보니?' 하는 거 같다ㅠㅠ) 


역행자를 읽고 나서 하루에 두 시간씩 책을 보고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열정의 기세를 몰아붙여 오늘 Liquid Love의 서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정말 어렵고 어려웠다 ㅠㅠ 철학적인 개념과 수준 높은 단어를 마구마구 쓰는 저자 덕에 한 시간 반 가량 반복하여 글을 읽고 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쨌거나 서문을 독파하고 챕터 1도 6페이지 반 정도 읽었는데, 모르는 단어가 너무 많아 줄을 치며 읽었다. 그 줄 친 것들을 사전에 검색하고 책의 여백에 써내려 가느라 또 한 시간가량 정도 걸렸다. 연신 반복해서 읽느라 정작 독서는 많이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청이 추천해 줬던 방법대로 오늘은 내 나름대로 읽은 부분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해보려 한다. 열몇 페이지 남짓한 분량을 두세 시간가량 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어쨌거나 읽었다!  


서문


한정된 구역에서 가족과 절친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기존의 생활양식과는 다르게 딱히 깊은 유대가 없는 사람들과 엮여 살아가는 우리의 현대 사회는 마치 탄탄한 지지대가 없는 액체와 같이 너무나도 유동적이고 언제든지 흩어지기 쉬워졌다(liquid modern society). 개인화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서의 인간관계(relationship)란 상호 간의 약속을 최고로 중시하는 partnership, kinship과 동일한 개념이 아닌, 동시다발적으로 관계 맺음과 손절을 반복하는 connection이라는 개념에 가깝다. 0과 1이 무수히 깜빡이며 운영되는 컴퓨터처럼 손절은 관계 맺음만큼이나 어렵지 않은 것이 되었으며, 인간관계 역시 네트워킹이라는 유행어만큼이나 언제든지 잠시 맺어졌다 다시 끊어질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virtual relations). 이것은 연애 관계에서도 너무나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성과 진실한 관계로 맺어지기를 갈망하면서도 상대에게 속박당하고 싶지 않아 하며, 이러한 모순적인 니즈는 별 효과 없이 교과서적인 조언만을 제공하는 카운슬러들에 대한 거대한 수요를 만들어 냈다. (애초에 카운슬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근본적으로 모순된 것을 원하는 우리의 니즈에 있다). 이 책은 요즘 사회에서 관계를 맺고 헤어짐을 거듭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우울감과 고통의 원천을 다루기 위해 저술하였다.



챕터 1 (page 1 - 7) 


사랑과 죽음은 한 사람과 집단의 개성/특징에 깊이 관여하는 kinship, affinity, causal link와는 다르게 우리의 인생에서 개연성 없이 갑자기 일어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인에게서 사랑과 죽음을 각각 한 번씩밖에 경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과 죽음에 대해 익숙해질 수 없으며, 지인이 겪은 죽음을 통해/미디어를 통해 간접 경험하는 죽음은 우리가 실제 주변인의 죽음을 조우하였을 때와 전혀 관계가 없으며 모차르트의 돈 지오반니처럼 사랑을 하는 행위를 반복하며 일종의 스킬을 쌓아 나가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오히려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되어버리는 역설적인 결과만을 낳게 된다. 


플라토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만티네이아의 무녀 디오티마의 입을 빌려 에로스 예찬의 연애관을 말한다. 그는 '사랑은 육체의 아름다움에서 영혼의 아름다움으로 나아가 아름다움 그 자체에 도달하는 것이 올바른 연애의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에릭 프롬은 한 사람이 사랑을 하며 겸손함, 용기, 믿음 그리고 규율 없이는 제대로 된 만족감을 얻기가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소비문화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는 그러한 만족감을 주는 연애를 할 환경조차 조성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함과 용기의 부재 속에서 오로지 표면적인 유혹에 휘둘려 인스턴트식 사랑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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