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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May 14. 2020

백신 '코로나19'

200427_회사작당

세상을 휩쓸고 다니는 코로나 19 덕분에 새로운 용어가 사람들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한다. 몸은 멀지만 마음은 가깝게, 감염 확산 저지를 위해 서로의 자택에 머물며 외출과 사적인 만남을 자제하자는 취지의 운동이다. 시민 된 의무로서 다들 잘 박혀있는 모양이지만,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다고 느끼는지 곳곳에서 난리다. 시간이 잔뜩 남으니 ‘400번 휘저어 만드는 달고나 커피’ 같은 것도 잘 만들어 먹고 사람들에게 자랑한다. 이상하지만 나름 건전한 해소 방식이라 하겠다.

나는 아무 불만도 없다. 오히려 감사하기까지 하다.

기사를 읽었는데 인간이 바깥에 나가지를 않으니 10년 만에 바닷가에 거북이들이 모여들고, 산양이 자유로이 거닐고, 세계 곳곳의 도시들이 청명한 하늘을 되찾는 등 놀라운 일들의 연속이라고 한다. 어쩌면 지구가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멸망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줄 알았는데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맛봤다. 누가 말했듯 코로나19는 인간에게는 역병일지 몰라도 지구에겐 백신이었나 보다. 동물 친구들뿐만이 아니다. 거리두기로 둔갑한 이 바이러스는 나에게도 백신 같은 녀석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대략 한 달 정도 2교대 재택근무를 했었다. 때마침 잘 된 일이었다. 매일 11시간을 쏟아붓는 출근-근무-퇴근의 의식이 닷새 내리 이어지고, 근(勤) 자가 세 번이나 들어가는 통과의례답게 항상 성실 근면할 것을 요구받는 생활이었다. 거기서 잘 모면해내려면 껍데기 하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어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위장과 도피로 살았다. 일주일에 겨우 이틀만 주어지는 휴식으로는 턱도 없는 기만의 시기였다. 머리 꼭지에 달린 제정신의 심지는 점점 타들어갔고, 3월 중순 무렵에는 어떻게든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두지 않으면 폭주할 것만 같았다. 설사 코로나에 걸려서 폐가 엉망진창이 된다 해도 출근만 안 한다면 괜찮겠다, 하는 분별없는 생각까지 할 무렵이었다. 그때 재택근무가 시행되었다.

집에 머물더라도 어쨌든 근무는 근무였다. 언제든지 벌떡 일어나 연락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하지만 1년 반 만에 체험한 평일 낮의 여유는 감격이었다. 하루 종일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며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위안이었다. 시간은 잘만 흘러갔고 출근하는 때도 있었지만, 한 달간 잠시나마 일시정지 버튼을 딸각딸각 건드려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이런 생활이라면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느꼈다. 다시 꿈틀거리는 지구처럼 나도 그 한 달 동안 치료 중이었던 셈이다.

재택근무는 며칠 전 끝이 났고, 이제 언제 다시 시행할지는 모르겠다. 드디어 기지개를 켜나 싶었는데, 다시 쪼그라든다. 그래도 영영 벗어날 길은 없다는 절망을 비껴나가는 데는 성공했다. 인류의 절망이 지구의 희망이듯, 나에게도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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