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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로 돌아온 개구리
Mar 27. 2021
[말씀 묵상]
영화보다 재미있는 성경1
2018.1.19. 새벽. 잠이 오지 않아서
에스더서를 묵상하며 받은 은혜를 남깁니다.
성경이 재미있을 줄이야...
와스디 왕후를 폐위하다.
1. 에스더서는 고대 근동을 지배하던 독보적인 강대국인 페르시아의 향락으로 시작한다. 아하수에로 왕은 제국의 부요와 위엄을 자랑하려고 무려 백팔십일이나 성대한 잔치를 계속한다. 왕은 술에 취해 자제력을 잃어버리고 왕후의 아름다움을 백성과 대신 앞에서 자랑하기 위해 왕후를 데려오라고 한다. 그러나 왕후는 구경거리가 되는 것을 거절하고 왕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된다. 자신을 과시하던 왕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자 곧바로 왕후를 폐위시키고 남편의 권위를 강화하는 칙령을 선포한다. 자신이 당한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죄를 확장하는 것을 본다.
에스더가 왕후가 되다.
2. 그 후 왕은 새로운 왕후를 세우겠다는 조서를 각 지방에 보냈고 에스더도 뽑혀서 왕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에스더는 몸매도 아름답고 얼굴도 예뻤다고 한다. 성경도 외모 지상주의인가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모르드개는 부모를 여읜 그녀를 딸로 삼아서 돌보고 있었는데 왕궁으로 떠나는 에스더에게 ‘민족과 혈통을 밝히지 말라.’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에스더는 자기의 민족과 혈통을 밝히지 않는다. 여기서 에스더의 순종하는 성품이 느껴진다. (에스더 2:20) 에스더는 궁궐로 가서도 사랑을 받고 왕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한다. (다시 반복된다. 에스더는 누가 보아도 아리따웠다고 한다 ^^;; 에스더 2장 15절)
모르드개와 하만
3. 에스더가 왕후가 된 후에 모르드개는 관직에 올라 대궐에서 일을 하게 된다. (에스더 2:21)
그때 모르드개는 우연히 왕을 죽이려는 음모를 알게 되고 에스더를 통해 음모를 고발하여 왕을 구한다. 그렇지만 모르드개가 아닌 아각 사람 하만이 높은 벼슬에 오른다. 그리고 대궐 문에서 근무하는 신하들은 왕의 명령으로 하만이 드나들 때마다 무릎 꿇고 엎드려 절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무릎을 꿇지도 않고, 절을 하지도 않는다. 같이 근무하는 신하들마저 모르드개를 나무르고 타일렀으나 모르드개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각은 이스라엘의 원수였던 아멜렉의 왕이었고 (삼상 15:8), 하만은 그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소식은 하만의 귀에 들어갔고 하만은 분노하며 모르드개 뿐 아니라 유다 사람을 모두 죽이겠다고 결심한다. 모르드개는 상대적인 NO가 아닌 절대적인 NO!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부당한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상과 권위와 타협하지 않을 때 너무 많은 시련들이 있다. 특히 나에게만 오는 시련이 아닌 공동체에도 이 시련이 오기도 하기 때문에 때론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다 사람 말살 작전
4. 하만은 유다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점치는 사람들을 불러 날을 정한다. 운명의 날은 제비를 뽑던 첫째 달에서 가장 먼 열두 째 달 십삼일로 정해진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시건을 벌어주셨고 구원의 계획을 펼쳐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만은 지체하지 않고, 아하수에로 왕을 찾아가 유다 민족을 왕의 법을 지키지 않는 불손한 자들이라 모함하며 그들을 몰살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언한다.
“그들의 법은 다른 어떤 백성들의 법과도 다릅니다. 더욱이, 그들은 임금님의 법도 지키지 않습니다. 임금님께서 그들을 그냥 두시는 것은 유익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르다’ . 하나님을 믿기에 ‘다른’ 삶을 산다는 게 죽음에 처하는 이유가 되었지만 이 부분을 읽으며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세상 사람들, 가까이는 같은 학교 선생님, 학생 그리고 가족들은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까? 아니다. 부끄럽지만 최근에도 한 선생님께서 “크리스천이었어?”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회개한다.
하만은 왕의 법을 지키지 않는 불손한 자들이라 모함하며 그들을 몰살하자고 간언한다. 왕은 하만이 일만 달란트를 제공하겠다고 나서자 인장 반지를 준다. 유다 민족을 말살하려는 왕과 하만의 계획 이면에는 돈에 대한 추한 욕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다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라는 조서가 공포된다. 졸지에 유다 사람들은 시한부 인생이 된다.
극명하게 대비된다. 돈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들과 하나님을 믿기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 하만의 말살 계획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죽으면, 죽으리라
5. 조서를 접한 모드르개는 상복을 입고 성문에 주저앉아 통곡했고, 각 지방의 유다 백성들도 상복을 걸치고 금식하며 운다. 모르드개는 에스더 왕후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에스더가 직접 왕에게 간청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순탄하지 않았다. 왕이 에스더를 찾지 않은 지 삼십 일이나 되었고(왕의 총애가 예전 같지 않았음) 임금이 부르지 않는데 왕에게 다가가는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앎에도 불구하고 모르드개는 동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쩌면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보았다는 듯이 에스더의 결단을 촉구한다.
“왕후께서 이처럼 왕후의 자리에 오르신 것이 바로 이런 일 때문인지를 누가 압니까?”
이에 에스더는
“법을 어기고서라도, 내가 임금님께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다가 죽으면, 죽으렵니다.”
라고 결심한다.
에스더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리고 얼마나 무거웠을까.. 자신과 민족의 삶을 감당하는 게..
생명을 거는 희생이 없이는 생명을 살릴 수 없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에스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사흘 밤낮으로 함께 기도해주는 민족이 있었다.
반격의 서막
6. 에스더는 죽으면 죽겠다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간다. 다행히 왕은 에스더에게 금 규를 내밀었고 에스더의 청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에스더 왕후, 무슨 소청이라도 있소? 당신에게라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주겠소.”
이정도 말이면 바로 하만의 계획을 없애달라, 하만을 쳐달라..등의 부탁을 바로 했을 법 한데, 에스더는 신중하게 일을 진행한다. 청을 아뢰기 전에 왕과 하만이 함께 할 수 있는 잔치를 초대한다. 기회가 왔지만 주님을 신뢰하기에 서두르지 않고 잠잠하게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던 것이다. 주님을 신뢰한다면 서두르지 말고 잠잠하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결단, 사흘의 기도, 신중하게 행동에 옮기기)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하만이 성문을 지키는 모르드개의 태도를 견디지 못하고 바로 그를 죽일 계획을 세워버렸기 때문이다.
“자기(하만)는 재산도 많고, 아들도 많으며, 왕이 여러 모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여 주고, 자기를 다른 대신들이나 신하들보다 더 높은 벼슬자리에 앉혔다면서 … (중략) … 에스더 왕후께서 차린 잔치에 임금님과 함께 초대받은 사람은 나 밖에 없다네.”
세상의 지위와 소유를 다 갖췄다고 생각하며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하만이기에 다른 사람과 달리 자기를 보고도 일어나지도, 인사하지도 않는 모르드개를 보며 화가 났던 것이다. 세상의 자랑거리가 얼마나 허망한 지 깨닫지 못하는 하만의 모습을 다시 본다.
하만은 높이 쉰 자짜리 장대를 세우고 모르드개를 죽이려 한다.
역전
7. 하만의 계획대로라면 잔치가 열리기 전에 모르드개는 죽게 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서 본문에서는 한 번도 직접 거론되시진 않으시지만) 왕이 잠에 들지 않게 해서 궁중실록을 보도록 역사하신다. 그 결과, 왕은 궁중실록을 읽다가 모르드개가 반역 음모를 밝히고도(에스더 5장 27절) 상을 얻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마침 그때에, 하만이 왕에게 자기 집에 세운 장대에 모르드개를 달아 죽일 수 있도록 허락을 받으려고, 궁전 바깥뜰에 와 있었다. (에스더 6장 4절)
하나님의 타이밍! 왕은 하만에게 자기가 특별대우를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다. 포상할 대상이 당연히 자기라고 착각한 하만은 더 높아지기 위해 “왕의 옷을 입고, 왕의 말을 타며 왕의 대신 가운데 가장 높은 이의 손에 맡겨서 성을 순회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결국 하만이 착각하고 내뱉은 이 한마디가 하만과 모르드개의 운명을 바꾼다. 하만은 자신의 손으로 모르드개에게 왕의 옷을 입히고 왕의 말을 태우고, 자기 입으로 모르드개를 높이며 성을 순회하게 된다. 나를 높이려다가 결국 한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십자가의 역설이 떠오른다. 예수님을 죽인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죽이면 그들이 다시 높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지만 결국 하나님(왕)과 같이 존귀와 영광을 누리게 되신 이는 예수님 뿐이었으니까)
하나님의 타이밍은 절묘하고 완벽했다. 정말 극적이고 소름 돋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우연히 잘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하시는 분이셨다. 내게 일어난 많은 일도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하만의 최후
8. 두 번째 잔치가 열렸을 때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드디어 에스더는 왕의 세 번째 말에 답을 한다.
“에스더 왕후, 무슨 소청이라도 있소? 당신에게라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주겠소.”
“… 나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간청입니다. 나의 겨레를 살려 주십시오. 이것이 나의 소청입니다. …”
그동안 자기 민족과 혈통을 밝히지 않았던(에스더 2:10) 에스더가 겨레의 운명 앞에서 진실한 간청을 한 것이다.
결국 왕은 진노했고 하만은 사색이 되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에스더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하만의 절박한 선택은 오히려 왕의 여인에게 접근한 죄를 추가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모르드개를 위해 준비했던 장대에 하만이 매달려 처형당한다. 인과응보의 시놉시스, 이를 이렇게 극명하게 드러낸 이야기가 오래된 성경책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악은 결국 드러나고 악인은 결국 망하게 된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면 안 되겠다.
구원과 심판
9. 모르드개는 즉시 새 조서를 작성하고 유다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졸지에 시한부 인생이 됐던 유다사람들이 많은 민족들 가운데 두려워할 민족이 된 것이다.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우세한 힘으로 원수들을 진멸한다.
“… 재산을 빼앗지 않았다. ” ×3
유다 백성은 그날을 승리의 탐욕을 채울 기회로 삼지 않았다. 유다 사람을 말살하고 그들의 재산을 뺏으려 했던 하만과 비교된다. (에스더 3:13) 이는 탐욕이 아닌 심판의 결과로 대비되어 보여진다.
비하인드
10. 거의 모든 책이 결론을 끝에 두듯 에스더서에서도 결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자기(하만)는 재산도 많고, 아들도 많으며, 왕이 여러 모로 자기를 영화롭게 하여 주고, 자기를 다른 대신들이나 신하들보다 더 높은 벼슬 자리에 앉혔다면서, 그들 앞에서 자랑하였다.’
(에스더 5장 11절)
‘유다 사람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 다음으로 실권이 있었다. 그는 유다 사람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았다. 특히 자기 백성이 잘 되도록 꾀하였고, 유다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도록 애썼으므로, 같은 겨레인 유다 사람 모두 그를 좋아하였다.’(에스더 10장 3절)
주인공은 에스더이지만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계획의 촉매제였다. 부모를 여읜 에스더를 돌본 것, 왕을 암살하려는 계획을 알아챈 것, 하만에게 절대 무릎 꿀지 않은 것, 민족을 위한 결단을 에스더에게 촉구한 것, 새 조서를 보내 유다 사람들을 구한 것...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계획대로 사는 사람은 세상의 멸시와 위협 속에서도 결국 높아진다는 것을 모르드개의 삶을 통해 본다. 하만과 똑같은 세상의 지위였지만 하나님 나라 속한 사람이기에 덕이 되는 삶을 산 모르드개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울러, 극명한 대비를 보여줘 경각심을 준 하만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하나님 아버지,
에스더서를 묵상하며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타이밍을 묵묵히 기다리며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의 탐욕에 물들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