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아버지
"용서는 미움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이해가 되었을 때 온다.
이제 안다
미움도 사랑도 결국은
같은 자리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교수님, 저는 아버지가 정말 싫었어요.
저와 동생에게 단 한 번도 다정했던 적이 없었거든요.
소리만 지르고...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싫었습니다"
"그런데요, 교수님
제가 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봤어요.
군대에 입대하던 날,
문 안으로 들어가다 뒤를 돌아봤는데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이상했어요.
음... 뭐랄까..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사랑..
뭐 그런 걸 느꼈다고나 할까요."
"그 이후요?
제대하고 아버지 하고 둘이서 개그콘서트 보며 같이 웃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나쁘지 않아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과 대표와
학생 몇 명과 함께 교정 벤치에 않아
이야기를 하던 날의 기억.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녀가 또렷이 기억하는 건
같은 학년의 학생들보다
좀 더 철이 들어 보였던 그 애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그때.
그녀는 그녀의 아버지를 떠올리고.
웃고 있었지만,
마음 한켠에서 슬픔이 밀려왔던 그날의 기억.
그녀는 언니 둘, 오빠 셋,
막내로 태어났다.
큰 언니와 나이 차는 스무 살.
아버지는 큰 언니와 동갑인 젊은 여자와 살림을 차려
가끔씩 집에 들렀다.
그때마다
자식들을 앉혀놓고 훈계했다.
"공부 열심히 하라"
언니. 오빠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지만
어린 그녀는 달랐다.
아버지를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친구들이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늘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서울에 돈 벌러 갔다"라고
난 방학되면 아버지한테 서울 간다"라고
하얀 바지에 백구두를 신고
집에 나타나던 아버지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어린 마음에 그 미움은 설명되지 않는 슬픔이었다.
서울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와 그 여자가 사는 집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학교를 다녀야 했다.
그때 아버지와 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여자애였다.
그녀의 큰 언니와 나이가 동갑인 그 여자.
아버지는 오로지 자신의 행복만이 중요한 사람이었을까.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는 분노에 휩싸였다.
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 아버지에게
가스통을 들고 와 소리쳤다.
"당장 나가요. 여기가 어디라고 와요!"
언니들과 오빠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소리쳤다.
엄마의 외로움과 슬픔을 대신 터트리고 싶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이제 늙고 병약해졌다.
그 여자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그녀는 쉰을 넘기고서야
조금씩 아버지를 용서하기 시작했다.
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리는 계절이면
복숭아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택배로 한 상자 보낸다.
안부를 묻고 용돈을 보낸다.
엄마는 혼자 여섯 자식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느라
평생 허리가 휘어지게 일했다.
그럼에도 가끔 집에 들르는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바람이 나서 딴살림을 차린 아버지가
집에 와서,
막둥이로 그녀가 태어난 것을 보면
아마도 엄마는 아버지를
끝까지 사랑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콧노래를 부르며 자식들에게 웃음을 주던 사람.
그래서일까.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미움 속에서도
어쩐지 그리움이 함께 남았다.
이제는 엄마는 세상에 없고,
아버지는 여전히 그 여자와 함께 산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그 여자는
자신을 치료해 준 유부남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 사랑 하나로 평생을 살았다.
그녀는 이젠 그 여자의 삶도 가엽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두 여자에게서 끝까지 사랑을 받은 행복한 남자였을까.
늙은 몸을 이끌고 겨우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묻는다.
"아버지, 당신의 삶은 행복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