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정직함
얼마 전 회사가 이사를 했다.
사옥이라고 불렀지만,
사옥이라 하기에는 다소 소박한 공간이었다.
넉넉하던 사무실은 이전 후 눈에 띄게 좁아졌고
이런저런 일들은 정리되지 못한 채 공중에 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정리되지 않은 것은 공간이 아니라 내 마음이다.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회사는 출근을 원했지만
내 마음은 이미 한 발쯤 떠나 있었고,
그럼에도 나는 회사를 위하는 척
그럴듯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말과 마음이 어긋난 채 며칠을 보내고 있다.
아주 오래전,
전통과 예절이 유난히 강조되던 보수적인 빛깔의
한 소도시에서 살 때의 일이다.
BMW라는 브랜드조차 낯설던 2003년쯤으로 기억한다.
출근길을 서두르다 옆에 주차된 차의 뒤 범퍼를 슬쩍 부딪치고 말았다.
안개가 내려앉은 이른 아침이었고, 차에 대해 무지하기도 했던 나는 언뜻 보기에
오래된 르망 정도로 여겼다.
경비실에 상황을 설명하고
차주에게 연락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 뒤 서둘러 직장으로 향했다.
차가 얼마나 손상되었을지 마음을 졸이며 연락을 기다렸다.
오후가 되어서야 경비실을 통해
그 차주가 000님을 잘 안다고 하며,
같은 직장에 다니는 000님이라는 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
그분은 서울에서 온,
최근에 BMW를 샀다고 좋아하던 이야기가
우리 부서까지 전해지던 다른 부서의 상사였다.
부딪친 차가 오래된 르망이 아니고 BMW였다는 사실에 수리비 걱정이 앞섰던 것 같다.
이후, 그분이 했던 말이 잊히지가 않는다.
"범퍼는 원래 박으라고 있는 겁니다.
차 사고가 나서 기분 좋은 사람은 없겠지만
제가 기분이 좋은 이유는 정직하게 연락을 남겨준 사람이 00님이기 때문입니다.
낯선 이 도시에서 좋은 믿음을 갖게 해 줘서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서울 사람이라 그런지 말도 참 따뜻하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당시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도 있었으며,
그분은 미혼이었다.
그 말에 어떤 이성적인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고
나는 믿는다.
그저 사람에 대한 투명한 신뢰, 품격 있는 태도 속에서
그분은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정직함'으로 정의해 줬던 것 같다.
요즘 들어 그분이 자주 생각난다.
마음을 속이고 싶을 때, 적당히 타협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완전무결한 도덕적 존재로 믿어주던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분이 본 나의 모습은 어쩌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도, 늘 정직하게만 살아온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럼에도 나를 지극히 정직한 사람으로 믿어주었던
그 '절반의 정직함'을
나머지 절반으로 채워가고 싶은 무거운 욕망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 믿음에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냥...
내 마음이 그렇다.
[Gemini가 전해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