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
어떤 만남은 잘 살고 있을거라는 믿음만으로
충분하다ㆍ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였을까.
넌 기억하니?"
"응 언니, 난 기억해.
그때 난 열두 살이었고. 언니는 열세 살이었어."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가 몇 살이었는지.
명절이면 할머니 집에 다 같이 모여 어린 동생들과 숨바꼭질을 하던 기억.
그중 유난히 눈이 크고 얼굴이 하얗던 서울사는
사촌 여동생.
"네 기억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이었니?"
"언니는 똑 부러지는 사람이었어"
"내가? 난 그런 사람 아닌데......."
어쩌면 우리는 서로를 만난 것이 아니라, 각자가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시절과 만난 것일까.
사촌동생과의 만남이 우연은 아니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기신 작은 땅,
그 매듭을 풀기 위해 흩어졌던 혈육들의 이름이 소환되었다.
작은아버지의 죽음 이후 성(姓)까지 바꾸고 남남처럼 살았던 동생.
그녀는 땅에는 관심이 없다면서도 "언니만은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단다.
어느 날,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로 전화가 울렸다.
받지 말까 하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는 순간,
울음이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00 언니 맞아"
"나, 지은이야 언니......"
전화를 받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사람이 많은 백화점 내 카페에서 동생을 만났다.
알고 보니 서로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재회 장소로 일부러 사람 많은 백화점 카페를 골랐다.
조용한 곳에서 마주 앉아 그녀의 눈물을 보면,
나도 울 것 같은 그런 상황이 싫었다.
내게 과거는 아련한 그리움인 동시에, 가슴 한켠
외로운 사막이다.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부모님의 사랑은 받을 수 없는 갈증의 시간이었으니까.
사람 많은 카페에 앉아 있는 동생을 먼발치에서도 한눈에 알아봤다.
세월은 거스를 수 없었지만, 어릴 적 그 모습 그대로인 듯 느껴졌다.
반가움인지, 아니면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마음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언니"라고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호칭이 낯설고 무거웠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아버지가 떠나고, 어머니의 재혼과 함께
성을 바꾸며
지난 시절의 흔적까지 지워야 했던 그녀의 삶.
일곱 살 많은 공무원 남편을 만나 딸 하나를 키우며 무사히 건너온 시간들.
몇 시간 이야기하는 내내 동생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상하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전화를 받았을 때 울먹이는 동생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마음과 달리.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남처럼 살아왔는데 지금 내게 이 만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각자의 삶을 잘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남편은 말했다.
"연락이 끊겼던 사촌인데, 앞으로 가끔이라도 만나지 그러냐."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냉정하다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제 모든 인연을 성실하게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자유롭고 싶다.
관계에 쏟아야 하는 감정의 에너지, 그 노력을 기울이고 싶지 않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런 내가 이상한 걸까.'
하지만 모든 인연이 다시 이어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ㆍ
어떤 만남은 그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서로가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왔다는 확인.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잘 살아갈 것이니
그것으로 되었다는 확인.
그날의 만남은 과거를 되돌려주지 않았다.
대신 한 가지를 분명히 가르쳐주었다.
이제 인연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의 거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사촌동생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녀의 남은 시간들이 늘 평안하기를.
40년도 더 지난 세월을 가로질러 묶인 매듭은, 다시 인연을 이어가기 위한 끈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그 자체로 온전했음을 축복하는 마침표였다.
나는 그거면 되었다.
[Gemini가 전해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