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의 기록
2월 28일 해운대의 오후
해운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숙소 창가.
친척의 결혼식과 내 생일을 겸해 떠나온 1박 2일의 짧은 여행.
저녁에 뭘 먹을지 사소하고 평화로운 대화 사이
남편의 거칠고 다급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미국하고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다는 속보가 떴어."
순간, 휴대전화 화면은 날 선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아들과 나는 동시에 뉴스를 훑어 내렸다.
중동 정세의 긴박함, 군사시설 공습, 보복 예고....
영공이 통제되고 항공편이 잇따라 취소되고 있다는 소식들.
"중동, 두바이, 미사일 파편.'
이 모든 단어들에 심장이 뛰었지만
다행히 딸은 그날 오전, 이미 뉴욕행 비행기에 올라 있었다.
출국 한 시간 뒤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 부부와 아들은 천만다행이라고
00 이는 안전한 뉴욕으로 가고 있으니 괜찮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천만다행이라는 말이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던가.
2월 28일 해운대의 밤
해운대의 밤바다는 고요했다.
파도는 일정한 리듬으로 밀려왔다 밀려갔다.
그러나 우리 셋의 시선은 바다가 아니라 뉴스 속보 자막에 붙들려 있었다.
먼 나라의 분쟁이
낯선 부산의 식당 테이블 위로 내려앉았다.
한국시간 밤 11시가 가까워질 무렵,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뉴욕에 잘 도착했다는 안부와 함께, 두바이 공항이 폐쇄되어
모든 비행이 취소되었다는 소식도 전했다.
"지금은 네가 제일 안전한 곳에 있어
뉴욕에 여행 갔다고 생각하고 편히 지내길"
딸에게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내 목소리 아래에는 지워지지 않는 긴장이 깔려 있었다.
3월 1일 경계의 아침
아침 바다는 투명했다.
흐린 날씨에도 해변을 달리는 사람들과 산책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7층 숙소 창 너머로 보였다.
세상은 이토록 평온해 보이는데
어느 하늘은 여전히 군사 작전 구역이고
어느 공항은 멈춰 서 있다.
딸은 안전한 뉴욕에서 직원들과 즐겁게 보내고 있다고 했다.
우리 부부와 아들은 "00 이가 뉴욕에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면서도 눈은 여전히 뉴스 속보를 쫓고 있었다.
완전한 안정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까지는
차라리 뉴욕에 머물러 있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딸은,
주말 내내
두바이에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는
긴급 공지와 안내 메시지가 이어졌다고 했다.
친한 동료는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것이 무서워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3월 2일, 여전한 긴장과 작은 안도
두바이 현지에서는 어제 '이제 안전하다'는 문자가 왔다고 딸이 전했다.
오늘 두바이 비행을 준비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가,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호텔에 대기하라는 안내가 이어졌다고 한다.
힌 문장의 메시지 사이에서도 결정이 번복되는 상황.
그 혼란스러운 행간을 읽으며, 저 멀리 사막 위의 도시가 겪고 있을
소란과 긴박함을 짐작해 본다.
이번 일을 겪으며 새삼 깨달았다.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촘촘하고 세밀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지도 위에서는 아득히 먼 지점의 국제뉴스 한 줄이,
한국에 있는 우리 가족의 심장 박동을 이토록 세차게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고도 먹먹하게 다가온다.
불안 속에서도 우리를 붙들어 주는 것은
결국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목소리와
"지금은 안전하다"는 한 문장이라는 것.
어떤 하늘 아래에서도 미사일 파편이 아닌 평화로운 저녁노을이 내리기를.
불안에 떨며 바닥에 이불을 펴고 웅크려야 했던 이들이 다시,
포근한 침대 위에서 깊은 잠을 이룰 수 있기를.
하루빨리,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