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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명찬 May 09. 2020

오랜 은인

  

아침에 눈을 떠보면

아무도 모르게 배달된 한꾸러미의 시간.

고맙기 그지없다, 발자국 소리도 없이

던져놓고 총총히 사라져 간 오랜 은인이여.     


포장을 풀고 꺼내놓기도 전에

벌써 파닥이는 시간의 날개.

주어진 삶이란 순간순간이 모두 소중하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서 집을 나서지만

나의 비행은 처음부터 서툴다.     


때와 방향을 알지 못한 채

솟아오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시계 제로의 하늘에서 내려오며

재빨리 나는 생각한다, 내가 다치기 전에

추락이란 말은 인정할 수 없어.

이건 자유낙하야, 틀림없이.     


내려놓을 이유

찾기 시작하면 뭐든지 무거운 거지.

딛어 가는 곳마다

무언의 부호 같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여긴 지상임을 알려주고

문득 어깨 위 상처난 날개의 가는 떨림.

정말 뭐라고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할지.

빌려 주신 걸 이렇게 다쳐놔서...     


다시, 아침에 눈을 떠보면

또 배달된 한 꾸러미의 신선한 시간.

고마워 눈물겹다.

발자국 소리도 없이

던져놓고 총총히 사라져 간 오랜 은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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