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게 죽을 뻔한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 겨울, 차가운 아스팔트에 쓰러져 생각했습니다. ‘아, 여기서 끝나는구나.’ 주마등같은 의식은 첫 아이를 임신 중이던 아내의 얼굴, 가족들과 친지들 얼굴들을 지나, 맨 끝으로 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차분하고 담담해져서 억울하고 허무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고비를 넘고서야 처음으로 제대로 알았습니다. 살만큼 산 다음 근사하고 아름답게 죽기는커녕 무심히 가기도 한다는 것. 흘려들었던 뉴스들에서처럼 어쩌면 비명횡사할 수도 있다는 것. 심지어 남들의 눈에 아주 흉하게 비칠 수도 있다는 것. 그건 내가 마음먹고, 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 준비한다 해도 계획대로 척척 될 수도 없다는 것. 무엇보다 죽음이 나만 특별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
아찔하고 쭈뼛할 게 어디 그때 그 일뿐이었을까요. 죽음 옆으로 스치고, 떨어지고, 빠지고, 부딪히고 한 많은 일들이 떠오릅니다. 대충 기억해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나만 그렇게 겪은 일도 아닐 겁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살면서 여러 번씩, 수십 번씩 겪기도 하는 일들일 겁니다.
문제는 ‘그날’을 겪고 삶이 달라진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이제부터 사는 건 다 덤이라며 남을 위해 삽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루하루를 귀하게 쓰며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삽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당시에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으나 그마저 잊고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던 죽음을, 분주하기만 한 삶이 자꾸 가려놓기 때문일 겁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예상에 빗나감 없이 계속해서 사람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생각났다가, 잊어버렸다가, 잘살았다가, 막 살았다가, 큰길로 갔다가, 샛길로 갔다가, 똑바로 갔다가, 삐뚤게 갔다가,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하면서요. 그러면서 가끔 생각합니다. 잊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아직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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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감사의 때를 생각하면 꽃과 열매도 떠오르지만, 인생의 끝도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