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들기

만년필, 만년사람 이야기

by 손명찬


글을 쓰다 보면 만년필 만지는 게 즐겁습니다.

만년필이 종류별로 살살 늘어갑니다.


만년필의 감촉은 매력이 있습니다.

오래 쓴 만년필은 길이 잘 들어 있어 좋고

선물 받은 만년필은 각인 된 이야기가 정겹습니다.

굵은 촉의 만년필에서는 힘이 와 닿고

가는 촉의 만년필에서는 섬세함이 느껴집니다.

묵직한 만년필은 글에 무게감을 주는 듯하고

가뿐한 만년필은 글씨도 날렵합니다.


만년필들에 잉크 넣는 날은 왠지 속도 든든합니다.

잉크는 먹색과 청색을 섞어, 짙은 청색을 만들어 씁니다.

잉크 색에 내 나이, 중년이 깃드는 모양입니다.

손에 묻은 잉크는 잘 지워지지 않지만,

곧바로 지우거나 잊고 지내다 보면 이내 사라집니다.


만년필로 쓴 노트가 점점 늘어갑니다.

나중에 두 딸에게 반씩 나눠줘야지, 마음먹다가

글이 왜 정직해야 하는지, 진솔해야 하는지,

주인공은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이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됩니다.


만년 사람, 눈사람처럼 웃는 얼굴로

아이들의 가슴에 오래 남을만한 사랑 이야기를

오늘도 아내와 함께 인생 노트에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