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한 주가 지나고
성당에서 혼자 기도를 하는 시간이 몇 달에 한 번씩 주어진다.
매 주 가도 유아방에 있다보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없고 그저 시간을 성당에서 보내다 갈 뿐 내 마음에서 하는 말을 들을 수 없다.
오늘은 혼자 다녀왔다.
이럴 수 있는 시간에는 나를 돌아본다.
자주 그러지 못해서 더 그렇지만 두렵기도 하다.
매번 힘들다.
미사를 드릴 때마다 나오는 용서라는 단어가 나는 너무 너무 힘들다.
한 주를 감사하고 반성하고,
한 달을 일 년을 그러다 시간은 꼭 2016년 2월의 기억에 머문다.
동생에게 사고가 난 날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오로지 건강하게 일어나기만을 설마 그러지 않겠지... 했다.
가해자에 대한 미움은 없었다.
그러다 동생에게 호흡기를 떼던 순간에서 멈춘다.
동생의 심장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냐는 엄마의 말에 기계에 의한 거라는 의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몸에 연결된 선들을 잡아떼던 간호사의 손, 그 동작에 계속 흔들리던 선들...
미움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왜 그 간호사는 그렇게 성질부리듯 잡아뗐을까.
가해자는 경찰서에 간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본인은 그렇게 세게 달리지 않았다는 번복진술을 한걸까.
cctv는 없다고 잡아떼던 경찰은 근처 상가와 골목 입구에 있던 내가 3개나 찾을 수 있었던 그 증거물을 왜 없다고 한 걸까.
한 밤에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에서조차 신호등을 지키던 내 동생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미움이 생기니 용서가 되지 않는다.
자꾸만 용서하라는 미사 내내 나는 그러지 못하겠는 내가 힘들고 힘이 든다.
답이 없는 복잡한 미로를 걷다 눈을 감고 외친다.
잘 살자. 더 열심히 살자...
그게 지금의 나다.
하루가 지나면 한 주가 지나면 일 년이 지나면
나는 달라져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