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나는 누구
요 며칠은 내 시간이 아닌 날들을 보냈다. 방금까지 있던 일을 돌아보면 이렇다.
며칠 전부터 기미가 보였던 둘째 아이가 A형 독감 검사 결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오전에 병원 갔을 때는 지금 검사해도 결과가 안 나올 수 있다고 해 오후 5시쯤 다시 가서 검사했다.
해열제를 먹어도 떨어지지 않는 아이 옆에서 아이의 몸 구석구석에 손을 대 열을 떨어뜨리기를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먹여보려 애쓰기를 반나절. 주사를 맞아서, 가기로 했던 여행이 취소되어서 우는 아이를 달래기를 몇 시간, 기어이 밤 시간이 되어서야 열이 떨어지고 연말 술자리에서 돌아온 레오가 둘째 옆에 붙어있는 걸 떼어놓고, 다시 아이와 양치질하고 씻기고 같이 아로마 오일을 골라 가습기를 틀어두고, 장판을 켜두고 아이를 뉘었다. 미지근한 물이랑 온도계, 휴지, 해열제를 세팅하는 사이 둘째가 잠들었다.
둘째 아이를 챙기는 사이 첫째가 영어학원엘 다녀와 저녁을 챙겨 먹고, 주짓수에 갈 시간인데 뭉그적거리며 안 가는 걸 몇 마디 하다 못 이기고 내뒀다.
가기로 했던 여행을 취소하고, 다음 주면 시험인 첫째 아이랑 주말에 해야 할 일을 얘기하는데 딱 2과목 다니는 학원 일정이 겹친 걸 이제야 알려준다. 조정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양해를 구하는 메시지를 보내며 정리하는데 첫째가 묻는다. "엄마 지금 말투는 왜 그렇게 전투적이야?" 휴. 빠른 시간 안에 정리하려니 그런 걸.
일정을 정리하고 숙제를 전혀 안 해놓은 아이가 자려길래 30분만이라도 해야 한다고 설득해 앉혔는데 또각또각 소리가 들린다. 굳이 지금 이 시간에 손톱을 잘라야 하는 거니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들락날락한다. 그렇게 실랑이하다 한 두어 번 다시 하고 있는 과정을 점검해 보고 나도 이 글을 써본다.
오후 2시쯤엔 성당 헌화회 일로 성당에서 봉사를 하다 왔다. 밖에 설치된 구유를 꾸미는 일이었는데 안에서 작업하다 밖에서 설치만 해도 콧물이 나고, 손이 시렸다.
같이 꽃시장 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꽃수업을 오래 하셨던 헌화회장님께서 드라이플라워 작업할 때 필요할 소재를 챙겨주셨다. 데니스 보덴이었는데 그 소재 이름이 어렵다고 데니스 뭔가 하시는데 순간 함께 하는 형님들이랑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웃으니 좀 날아가는 일상의 무거움.
이제 아이들을 챙기며 다른 손은 거의 빌리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잘 커준 아이들 덕분에. 그럼에도 수월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며칠 전 만들었던 크리스마스 리스. 이미 내 손을 떠나 공간에 빛을 발하고 있겠지.
내년에는 루틴을 좀 더 만들어봐야겠다. 내 몸도 내 일도 더 기쁘게 돌봐야지. 부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