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플레라

나의 욕망이 빚어낸 서툰 곡선의 기록

by mini

셰플레라(Schefflera). 흔히 ‘홍콩야자’라 불리지만, 실은 인삼이나 두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두릅나무과 식물입니다. 그 태생답게 추위에 강하고 생명력이 강인하여, 대개 식물 세계에 갓 입문한 초보 ‘식집사’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되는 든든한 동반자이기도 하죠.

이사를 마치고 빈 공간을 채울 생명력을 찾던 제게,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은 운명처럼 한 장의 사진을 건넸습니다. 그것은 식물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작품에 가까웠습니다. 유럽의 고전적인 아치형 건축물을 닮은 우아한 곡선, 혹은 해변의 잔잔한 파도가 모래사장에 새겨놓은 S자 해안선처럼 매혹적인 실루엣. 저는 그 셰플레라의 자태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욕심이 빚어낸 '대공사'

동네 식물 가게 사장님은 제가 보여드린 사진을 보며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이 정도 대형 사이즈는 지금 없어요. 중간 사이즈는 있지만, 아직 라인이 잡히지 않은 어린 개체라 직접 와이어로 수형을 잡아가며 키우셔야 합니다.”

자신만만했습니다. ‘크기는 정성으로 키우면 되고, 형태는 내 손으로 직접 빚어내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이 고민을 잠재웠습니다. 그렇게 셰플레라는 저희 집의 새 식구가 되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만의 ‘대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 속 그 완벽한 외목대 라인을 재현하기 위해, 저는 마음에 드는 줄기 하나만을 남기고 주변의 풍성했던 가지들을 과감히 쳐냈습니다. 앙상해진 몰골이 잠시 마음에 걸렸지만, 금방 쑥쑥 자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이 앞섰습니다. 사장님이 느슨하게 감아둔 와이어를 풀고, 더욱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곡선을 만들어 억지로 고정했습니다.

“몇 주 뒤면, 너와 나는 인스타그램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 거야.”


멈춰버린 시간, 그리고 구조 신호

그러나 1년이 흐른 지금, 저의 셰플레라는 그날의 시간에 멈춰 서 있습니다. 지나치게 꺾어둔 줄기는 영양분의 통로를 방해받은 듯 점점 야위어갔고, 새로 돋아나는 잎들은 기운차게 번성하기보다 그저 가늘고 긴 목만 늘어뜨릴 뿐이었습니다. 통통하게 살이 올라야 할 줄기는 힘겨운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뒤늦게 와이어를 풀어주며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속삭여 보았지만, 녀석의 성장 의지는 이미 꺾여버린 듯했습니다. ‘무적의 식물’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시들해진 모습은, 그동안 제가 보냈던 ‘스파르타식’ 압박에 대한 무언의 항변이자 처절한 구조 신호였음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사춘기 자녀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사춘기를 지나며 어긋난 버린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럴까요. 저는 셰플레라를 향해 조용히 텔레파시를 보냅니다.

“셰플레라야, 내 욕심에 눈이 멀어 네 본연의 생명력을 가두려 해서 정말 미안해. 그래도 다행히 엄마는 포기가 빠른 사람이란다. 이제 더는 널 규격화된 틀에 맞추려 괴롭히지 않을게. 그러니 그저 지금 이대로, 내 곁에 살아만 주렴.”

이제 제 눈에는 듬성듬성한 잎사귀도, 조금 어색하게 휜 곡선도, 힘겹게 틔운 새순도 그 자체로 귀해 보입니다. 완벽한 ‘인스타 감성’의 식물은 아닐지라도, 저와 함께 인내의 시간을 견뎌낸 ‘나의 식물’이니까요.

아직은 무심한 옆모습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듯하지만, 식물의 시간은 인간보다 느리게 흐른다는 것을 믿어보려 합니다. 긴 방황 끝에 녀석이 다시 초록빛 활기를 되찾아 줄 그날을, 저는 묵묵히 기다려 주기로 했습니다.

IMG_6328 (1).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