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

푸른 정수리 쓰다듬기

by mini

입춘을 시샘하는 잔추위가 물러가기를 바라지만, 베란다 끝자락을 제외하면 밖은 여전히 혹한의 날씨입니다. 봄이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화원으로 향합니다. 이번 선택은 고민할 것도 없이 로즈마리였습니다. 흔한 허브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에 제가 데려온 아이는 겨우내 모진 바람을 견뎌내며 줄기가 단단하게 목질화(Lignification)된, 풀보다는 ‘나무’의 형상을 한 녀석입니다.

식물의 세포벽에 리그닌이라는 물질이 축적되어 줄기가 나무처럼 딱딱하게 변하는 이 과정은, 그가 견뎌온 시간의 훈장과도 같습니다. 부드러운 초록의 줄기가 갈색의 단단한 껍질을 입는다는 것은, 더 이상 작은 흔들림에 연약하게 반응하지 않겠다는 생존의 선언입니다. 보통의 허브들이 실내라는 닫힌 공간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그들은 본래 대지의 뜨거운 햇살과 거침없는 바람, 그리고 정직한 물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초록의 줄기들은 집 안의 정적인 공기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고개를 떨구곤 합니다. 하지만 이미 목질화를 거치며 스스로를 요새화한 로즈마리는 다릅니다. 고난을 통과하며 다져진 그 단단한 수피(樹皮)는 실내라는 환경에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낼 것 같은 신뢰를 줍니다.


로즈마리는 이처럼 강인한 생명력만큼이나 특유의 향기로 사랑받습니다. 식물의 좋은 향을 맡을 때 생각나는 책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자신의 책에서 식물의 향을 맡는 것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이고도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꽃향기가 우리에게 들어와 우리를 감싸면 나무들은 불안의 이마에 위로의 초록색 손을 얹고는 통증의 신경 경로를 안정시키고 중추 신경계의 균열 속으로 자신의 향기를 엮어 넣는다. 우리는 나무를 호흡하며 치료받는다.”

—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나무 내음을 맡는 열세 가지 방법』


오늘도 그 문장이 말하듯 온전한 치료를 받기 위해, 아침이 오면 분무기 이슬로 로즈마리를 깨워줍니다. 저는 덥수룩하게 자라난 삽살개의 머리를 쓰다듬듯, 로즈마리의 잎들을 가차 없이, 그러나 애정을 담아 마구 흐트러뜨립니다. 그 직후, 제 손바닥을 코끝으로 가져가는 순간은 하루 중 가장 황홀한 찰나입니다. 손끝에 배어든 쌉싸름하면서도 시원한 향기가 비염이 있는 제 코에도 깊숙이 침투합니다. 인위적인 방향제로는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야생의 생명력이 응축된 향입니다.

미세먼지 수치가 ‘보통’을 가리키는 날이면 저는 기꺼이 우리 집에서 햇살이 가장 밀도 있게 내리쬐는 명당을 녀석에게 내어줍니다. 창문을 열고 창틀 위에 로즈마리를 올려두면, 바람은 녀석의 가지 사이를 통과하며 집 안으로 은은한 숲의 기억을 배달합니다. 기분이 차분해지는 걸 보니 지금 로즈마리가 제 복잡한 머릿속으로 자신의 향기를 엮어 넣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저는 이 로즈마리를 거목으로 키워내겠다는 거창한 욕심은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식물을 들일 때 ‘죽이지 않고 크게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곤 합니다. 하지만 식물을 키우는 일은 책임감 이전에 오롯한 즐거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한 수목원을 만들겠다는 집착을 내려놓으면, 비로소 식물이 주는 현재의 계절감이 눈에 들어옵니다. 영원히 살려야 한다는 부담 대신, 저와 함께하는 한철의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며 지켜보는 ‘가벼운 식생활’이 더 많은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이런 가벼운 마음 덕분에, 저는 로즈마리의 성장을 기꺼이 제 일상으로 끌어들입니다. 지글거리는 팬 위에서 두툼한 스테이크를 구울 때, 갓 따낸 신선한 로즈마리 한 줄기를 툭 던져 넣으며 풍미를 더합니다. 요리에 쓰이지 못한 나머지 삐죽한 줄기들은 볕이 잘 드는 곳에서 바스락 소리가 날 때까지 말려둡니다. 충분히 마른 줄기는 저만의 ‘미니 스머지 스틱(Smudge Stick)’이 되어, 타오르는 연기와 함께 방 안의 눅눅한 공기를 씻어냅니다.


거창한 정원을 가꿀 수는 없지만, 창가에 놓인 이 작은 나무 한 그루는 제게 계절의 흐름을 읽어주고 일상의 호흡을 가다듬게 합니다. 나무를 호흡하며 치유받는 이 시간 덕분에, 하루는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 목질화되어 단단해진 줄기만큼이나 제 마음도 외부의 자극에 의연해지기를 바라며, 저는 오늘도 그 푸른 정수리를 쓰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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