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줄무늬에 담긴 이름
저는 동글동글한 형태를 좋아합니다. 화분 시장에서 다양한 멋진 식물들을 보다가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식물은 늘 동글동글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수박페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니 수박을 납작하게 눌러 평면으로 만든 것 같은 사랑스러운 얼굴로, 어제 막 농장에서 온 싱싱함을 뽐내고 있으니 어떻게 데려오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우리는 누군가를 깊이 알고 싶을 때 그의 이름을 묻습니다. 식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중에서 불리는 ‘유통명’이 식물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별명이라면, 학명은 그 식물의 가문과 본질, 그리고 역사를 담고 있는 기록입니다.
수박페페를 부르는 학명 Peperomia argyreia 는 이 식물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지를 압축해 보여줍니다.
먼저 'Peperomia(페페로미아)'는 후추를 뜻하는 ‘peperi’와 닮았다는 뜻의 ‘homoios’가 결합된 말로, 직역하면 ‘후추를 닮은 식물’입니다. 화려한 꽃잎으로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장미와 달리, 페페로미아 가문의 식물들은 후추처럼 길쭉하고 수수한 꽃대를 올립니다. 그들은 겉치레보다는 잎의 질감과 형태에 집중하며, 대개 습도가 높은 열대우림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겸손하게 자라나는 습성을 지녔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어지는 ‘argyreia(아르기레이아)’는 이 식물의 개성을 정의합니다. ‘아르기로스(argyros)’, 즉 ‘은(silver)’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식물이 가진 시각적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이쯤 되면 이런 궁금증이 스칩니다. “어? 아르기레이아? 아르기닌? 비슷한 건가?”
역시나 아미노산의 일종인 아르기닌도 처음 추출되었을 때 그 결정이 은백색이었기 때문에 같은 어원에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주기율표에서 은의 기호가 Ag인 것도,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이름이 ‘은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지요.
…아. 이제 그만하고 다시 우리 수박페페에게 집중해야겠습니다.
수박페페의 잎 위를 흐르는 오묘한 은빛 줄무늬는 단순한 무늬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두운 숲속에서 한 줄기 빛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반사하고 흡수하려는 생존의 흔적이자, 동시에 자연이 빚어낸 정교한 예술 작품입니다. 우리가 수박페페의 잎을 보며 “참 싱그럽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 ‘아르기레이아’라는 이름이 보증하는 은빛 광택이 초록색과 만나 극적인 대비를 이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창가에 놓인 그 식물을 보며 단순히 ‘수박을 닮은 잎’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름 속에 담긴 뜨거운 브라질의 습한 공기와, 그 속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던 생명력을 말입니다.
머나먼 길을 건너 정착한 이 귀여운 친구에게 적당한 환경은 직사광선을 피해 드는 밝은 간접광, 늘 축축하지는 않은 흙,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시간입니다.
여기에 브라질의 여유로움을 닮은 보사노바까지 틀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