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의 우주를 정복한 작은 거인
저는 10cm 플라스틱 포트를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가볍고 실용적이라는 장점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작은 플라스틱 포트는 식물과 집사 사이의 아주 긴밀한 소통 도구가 되어주곤 하니까요.
특히 흙이 바짝 말라 돌덩이처럼 딱딱해졌을 때, 말랑한 플라스틱 벽면을 손으로 조물조물 마사지해 주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손끝에 전해지는 흙의 질감을 느끼며 숨 쉴 틈을 만들어주면, 꽉 막혔던 혈관이 뚫리듯 식물의 뿌리도 그제야 깊은 숨을 내뱉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플라스틱 포트가 좋은 이유는 식물이 낯선 우리 집의 공기와 빛에 적응할 시간을 충분히 벌어준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1년 가까이 10cm의 작은 세상을 지키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다바나 고사리’입니다.
처음 그 아이를 만난 건 작년 봄의 화원이었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포트 속에서 다바나는 마치 덜 펴진 은빛 종이 뭉치처럼 구겨진 채 담겨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고사리의 초록과는 다른 신비로운 청회색의 잎들. 손끝으로 살짝 쓰다듬으면 ‘사각사각’ 기분 좋은 소리가 났는데, 그 소리가 마치 제게 건네는 첫인사 같아 망설임 없이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바쁜 일상 탓에 다바나에게 유난스러운 정성을 쏟지는 못했습니다. 흙이 마른 듯하면 조용히 저면관수를 해주고, 가끔 화분 마사지를 해주며 뿌리의 안부를 묻는 것이 전부였죠. 그런데 3개월쯤 지났을 무렵,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0cm 포트의 좁은 테두리 위로 갈색 솜털이 뭉친 듯한 기괴하고도 신비로운 줄기가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다바나의 생명선이라 불리는 ‘근경(Rhizome)’이었습니다.
이 식물의 학명은 Phlebodium aureum. 여기서 '아우레움(aureum)'은 라틴어로 '황금색'을 뜻합니다. 보슬보슬한 근경의 색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지요.
누군가는 털이 숭숭 난 이 근경을 보고 징그럽다며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제 눈에는 그 모습이 더없이 대견했습니다. 마치 좁은 집이 답답해 담벼락을 훌쩍 넘는 강아지의 발등 같기도 했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뻗는 식물의 팔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살길을 찾아 공중으로 팔을 뻗어 습도를 찾아 나선 것이었습니다. 식물은 주어진 환경이 척박하면 척박한 대로, 결코 원망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묵묵히 찾아냅니다.
습도가 80%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이 오자, 다바나는 기다렸다는 듯 폭발적인 생명력을 뿜어냈습니다. 작은 포트 지름의 두 배가 넘게 잎을 넓게 펼쳤고, 특유의 은청색 빛깔은 깊은 바닷속처럼 진해졌습니다.
잎이 풍성해지자 새로운 즐거움도 생겼습니다. 화분을 귀 가까이 대고 살살 흔들면, 수많은 프릴 사이로 경쾌한 바람 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특별한 영양제도, 명당자리도 아니었건만 다바나는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그 좁은 포트 위에서 자신만의 우주를 팽창시키고 있었습니다.
날이 차가워지자 성장은 더뎌졌지만, 1년이 다 되어갈 무렵의 다바나는 이제 그 작은 공간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제 잎의 크기를 키우기보다 조직을 단단하게 다지며 겨울을 견뎌내고 있는 듯합니다.
오늘 아침, 1년 전 그 모습 그대로인 빛바랜 플라스틱 포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겉모습은 볼품없는 벽돌색 플라스틱 조각일 뿐이지만, 그 위로 넘쳐흐르는 은빛 프릴의 파도는 그 어떤 고가의 토분보다 찬란하고 우아합니다.
10cm라는 한정된 세계 속에서도 다바나는 결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제약을 발판 삼아 근경을 뻗고, 미세한 바람에 몸을 맡기며 자신만의 리듬으로 사계절을 채워왔습니다.
이제 곧 다시 봄이 옵니다. 지난 1년간 좁은 포트 속에서 단단해진 이 작은 거인에게, 이제는 마음껏 뿌리를 뻗을 수 있는 넉넉한 새 집을 선물해주려 합니다. 10cm의 우주를 정복한 다바나 고사리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갔을 때, 또 어떤 풍경을 보여줄까요? 그 설레는 기다림으로 저의 봄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